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을 읽고나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라니! 그런 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잖아 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지만 비유적으로든 어떻게든 생각해봐도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없었다. 읽으면서 그 의미를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미국도서관협회가 선정한 우수 청소년 도서이기도 한 이 책을 약 3년 전 고등학교 때 독서 골든벨을 위해 처음 읽었다. 제목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 흥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감성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다시 책을 잡았다. 시골의 순진한 소년 로버트가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등장한다.
내용은 이랬다. 도살꾼 아버지를 둔 한 아이가 ‘핑키’라는 돼지를 선물로 받는다. 그 돼지를 키우면서 돼지에게 애정을 가지고 놀아주고, 추억들을 쌓게 되는데, 나중에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는 날이 와서 그 ‘핑키’라…(생략)

것을 충분히 고려했다면 핑키가 죽을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테너 아저씨는 모르고 있었던 걸까 사실 아버지가 다른 직업이었더라면 환경이 안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돼지를 도살하는 생각은 잘 떠오르지도 않았거나 글쓴이의 순수함을 지켜주자는 의도로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 것이지만 아버지에게 ‘핑키’는 아들에게 아무리 소중한 존재라 하더라도 매일 도살하는 돼지와 다를 바 없이 보이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돼지를 선물로 준 것은 잘못 한 것 같다. 처음에 아버지가 잠시 말렸던 것도 결말을 잠시나마 예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에서는 태너 아저씨가 로버트에게 선뜻 박람회에 가자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로버트의 아버지가 태너에게 박람회에 데려가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노동이 없으면 대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로버트에게 그렇게 가르친 사람(로버트는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아버지와 약속한 농사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모두 성실히 해내는 바른 아이로 자랐다.)으로서 그 좋은 기회를 로버트에게 그냥 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아들이 무상으로 기회를 얻도록 교육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굳이 로버트가 배스컴 아주머니의 화분을 옮겨준 일을 들먹이며, 좋은 일을 했으니 상을 주는 것처럼 인과관계를 꾸민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나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가 글씨 연습을 한 종이에서는 배우지 못하고 글씨를 쓸 줄 몰라서 무시당하고 투표도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한이 느껴진다.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날로 표현함으로써 아버지의 부재를 재확인했고 아버지 없이 가장의 일을 맡게 될 13살 어른 로버트의 현실을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