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나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나서
어린왕자에 나오는 ‘나’는 어렸을 때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모습을 그린 그림을 그려서 어른들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영락없이 모자이다. 당연히 어른들의 대답은 ‘모자’이다. 모자처럼 보이는 것을 모자라고 대답하는 것이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나’는 어른들의 대답에 실망하고 그 이후로는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대화를 끄집어낸다. 골프니 정치니 넥타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다들 그런 경험을 해봤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어른들의 세계가 너무 낯선 아이 중의 하나였다. 어른들을 만나면 반드시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해야 하고, 공손하게 답변을 해야 하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어른들의 대화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 중의 하나였다. 대개는 자식 자랑으로부터 시작해서 남편 자랑, 집…(생략)

보지 못하는, 그리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사물에는 환호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풍부하게 해 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에는 무관심한 우리 현대인들을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숫자로만 모든 것을 나타낸다.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들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제일 좋아하지`, `나비 채집도 하니` 하고 묻는 일은 없고, `그 애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이나 있니`,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니`, `그 애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시니`라고만 물어 댄다. 어른들은 그런 숫자를 통해서만 그 애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2억 원짜리 집을 보았다.`라고 하면, 어른들은 `야! 참 훌륭한 집이구나!` 하고 감탄할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감수성과 관찰력이 놀랍다. 기실 우리 주변에 아이들조차도 친구를 사귈 때 어른들의 기준으로 만나는 경우가 참 많다. 물론 부모가 아이들의 친구조차도 정해주기도 하지만. 우리는 지금 어른이 되었다. 내가 어른이 되기를 싫어하고 어른을 두려워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겉껍질로 만나는 관계. 그걸 참을 수 없어서였는데. 그러면 지금 관계는 알맹이로 만나고 있나 자문해 본다.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