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리나를 읽고나서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나서
인간의 사랑은 모든 것을 걸만큼 위대한 것인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짧은 순간 모든 것을 다 바친 안나 카레리나의 삶은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오던 삶에 비해 더 값진 것이었을까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 나서 바로 든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그녀와 브론스키와의 정열적인 사랑에 같은 인간으로서 가슴이 뛰기도 했지만 씁쓸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보다 지나친 사랑에 대한 맹목성, 결국은 파국으로 이어진 결말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이 작품에서는 러시아에서 농노가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귀족들의 사랑을 여러 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안나의 친정 오빠인 오블론스키와 돌리, 안나와 까레닌과 브론스키, 키티와 레빈의 사랑이 그러한데 이들 각각은 조금…(생략)

신을 완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수단인가를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다. 남성들이 주로 외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랑을 수단화한다면, 여성들은 좀 더 내면적이고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 수단화하는 것이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위대한 사랑에 빠질 수는 있으나 오로지 사랑의 상대나 사랑 그 자체 이외의 관계를 통해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즉 자기복잡성이 낮은 여성들의 경우엔 더 깊이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것이 실패했을 때 극단적인 자학을 행하게 될 수도 있다. 가정과 남편 이외에 다른 생산적인 활동의 대상이 없는 경우 아무런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고결한 귀부인과의 사랑을 나누는 젊은 미혼 남성은 지나치게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거나 우쭐해 질 수 있는 반면, 기혼여성은 남편 이외의 남성과 친밀하게 이야기만 나누어도 손가락질을 당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볼 때 여성이 그런 것을 모두 감수하고 내던지는 사랑은 남성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 정도에 있어서도 매우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럼 과연 현대인에게도 안나-브론스키와 같은 ‘위대한 사랑’이 가능할까 아직까지도 남성 주도적인 관습이나 문화가 잔존하고 있는 한 이러한 사랑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주변의 잘 아는 사람의 경우에도 자식이 둘씩이나 있는 한 여성이 직장에서 만난 다른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그 유부남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자신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할 테니 제발 이혼만 해달라고 남편에게 애원을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거의 폐인처럼 자신도 아이도 아무 것도 돌보지 않고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남성이 바람을 피게 되면 언젠가는 가정으로 돌아오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아예 가정을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경제력과 권력을 쥔 여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이렇게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거는 여성들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본다. 오히려 이들에게 사랑은 하나의 유희가 될 수도 있고 액세서리를 골라서 걸치는 것처럼 깊이 개입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성 중심적인 사회화 과정이나 관습 등이 거의 사라진다고 해도 기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성적 흥분이나 리듬의 차이 등 성적 경험에 있어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진화심리학자들 역시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어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19세기 식의 낭만적 사랑의 형태는 점점 변화하고 있으며 ‘위대한 사랑’에 몰입하는 여성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증가함에 따라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안나를 지금 사회에 옮겨 놓는다고 할 때, 만약 그녀가 전문직 여성이었고 자신의 직업적 성취에 크게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과연 한 남자와의 사랑 여부에 그다지도 연연할 수 있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녀는 남자 이외에 몰두할 생산적인 대상이 없었던 것이다. 고작 사교계의 고상한 척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위선 덩어리 귀족 부인들, 친척들과의 교류, 유모나 하인들이 다 돌봐주어 육아나 가사에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이 안나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낭만적 사랑, 안나처럼 완전히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위대한 사랑’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연애를 언젠가는 꼭 한 번쯤 해보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관념, 첫 눈에 반한 사람이 내 운명의 사람이며 그 사람과는 평생 처음에 사랑에 빠질 때의 감정으로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믿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은 이상일 뿐이고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사랑의 시뮬라크르가 실제로는 이미지나 허위일 뿐임에도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매 순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꿰뚫어봐야 한다. 실제 현실에서 존재하는 사랑은 그렇게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끝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노력과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에릭 프롬의 말처럼 진실한 사랑과 초반에 ‘사랑에 빠져드는 감정’을 혼동하지 않고, 사랑을 통해 자신과 상대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완전한 사랑에 가까운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감정과 더불어 ‘능력’의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