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를 읽고나서

난중일기를 읽고나서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장군이자 영웅인 이순신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일기를 써 내려가는 인간 이순신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소설 속 흔한 문구 ‘그도 사람이었다.’는 난중일기를 읽고 난 내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깊은 밤 달빛 아래서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모습도 많았고, 몸도 자주 편찮으셨던 것 같다. 전장의 장수라는 말은 내게 냉정한 이미지를 갖게 했지만, 난중일기 속 이 순신은 종의 병까지 걱정할 정도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늘 알고 있던 모습 처럼 130여척의 적선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도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다시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 맞혀라”라는 말로 부하들을 다독이고 이끄는 리더이기도 했다. 잘 알려 진 것처럼 늘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던 효자였으며,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애끓 는 울음을 …(생략)

독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늘 여기저기서 찾아와 이순신 장군 을 붙들고 상황을 의논하고, 다른 이의 문제점을 털어놓기도 했고, 활쏘기를 겨루 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달빛 아래 인간 이순신 또한 외롭지 않 았을까 난중일기를 읽는 동안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 문구는 명량해전을 끝낸 다음 달이자 이순신이 아들 면의 죽음을 듣기 전날 일기의 일부다. 그 밤 이 순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임금마저 궁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간 전쟁에서 열심히 싸운 끝에 얻은 것은 억울한 옥살이었다. 그리고 늘 어머니 소식을 제 때 듣 지 못하면 걱정으로 일기를 마무리하던 사람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 없이 내려진 명, 백의종군. 자신을 모함하던 원균은 ‘칠량전’ 패배만 남기고 죽어 버렸다. 전지로 가는 내내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적 앞에서 관리들이 스스로 불을 지르고 도망을 가서 텅 비어버린 관청과 마을의 모습이었다.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었지만 동요하는 민심을 붙잡으며 사태를 수습하는 그의 노력을 비웃 듯 제 살 길 찾아 도망가는 장수까지. 그런 그가 명량에서 적군 130여척 앞에 서 있었다. 내 뒤에 있는 10여척에 불과한 아군도 도망가고 싶어 발을 뒤로 빼는 사 람들이 지휘관이라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일기의 뒷부분에서 그가 걸어온 길은 나 라면 차라리 꿈이길 바랐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도 그는 명량해 전에서 역사에서 남을 만한 승리를 거두며 나라를 지켜낸다. 하지만 나라의 상황 을 아파하고, 시대를 탄식하던 그에게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또 한 번의 아픔이 올 뿐이다. 문득 그 밤에 잠을 뒤척이는 인간 이순신의 뒷모습이 궁금했다. 자신의 슬픔을 뒤로 하고 군사를 독려하며 적진을 향해 나갔던 이순신이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에 담긴 그의 모습은 리더라는 자리가 외로운 위치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 같 았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그가 더 빛나 보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이의 삶 을 쉽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여건이었다면 그 정도 성공을 거둔다고. 난중일기 속에 묘사되는 원균 역시 그런 인물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인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외로운 길을 의연히 걸어간 이의 뒷모습이 그래서 더 궁금했다. ‘내일이 막내 아들이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이지만 마음껏 울어보지 못하였다’는 그의 일기는 한편으로 빛나는 이순신의 뒷모습을 애잔하게 보이게도 했고. 그 역시 아버지였 고, 아들이었으며, 남편이었고, 그리고 사람이었다. 내리는 비를 보면서도 농사를 걱정하고, 추위에 떠는 병사를 걱정하고, 아픈 동 료를 떠올리며 걱정하고, 노모를 걱정하고, 아들들의 발걸음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하던 이순신의 마음은 난중일기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리고 끙끙 앓기도 했 고, 좋은 꿈이나 점괘에 기분 좋아하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도 그대로 담겨있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장군으로서 전후를 살피고 약속을 어긴 병사를 벌하고, 맡 은 임무를 제대로 한 이에게는 상을 내리는 원칙주의자의 모습도 보인다. 옷이 없 는 병사에게 옷을 나눠주기도 하고, 자신의 종들이 농민에게 밥을 얻어먹은 것을 꾸짖고 밥쌀을 갚아준 것 또한 이순신의 모습이다. ‘자기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크게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데’ 무턱대고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한탄하기도 하고, 나랏일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하는 것 또한 그의 모습 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난 깊은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의 모 습을 따라하듯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일기를 읽어내려 가며 자신은 도망가면서 내 백성 내 나라 지키겠다고 목숨 바쳐 일하는 사람들을 간신의 말 한마디에 꾸짖는 왕 때문에 내 속이 터질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바람 앞의 등불인 나라 상 황에서 일제시기에 친일파처럼 왜적에 붙거나 그 와중에도 자신의 권력과 치적에 힘쓰는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가끔은 어머니와 자식을 먼 저 보내고 그리움과 아픔에 눈물짓는 이야기에 마음이 비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겪지 않은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난중일기를 내 그릇 안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광화문의 동상처럼 커다란 존재로 내게 인식되어 있는 장군 이순신의 뒷모습이 궁금했다. 숨기기도 꾸미기도 쉽지 않은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 이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상상하는 동안 마음이 아팠다. 일기의 막바지로 갈수 록 안타까운 일의 연속이었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감정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결국 전장에서 삶의 마지막을 다하셨다는 것에. 영웅 이순신에게 많은 것을 받고 도 인간 이순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하기도 했고. 난중일기는 그렇게 내게 역사서라는 점 이외에도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리라 다짐해 본다. 그것이 난중일기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순신 장군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보답이 되지 않을 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