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나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고나서
“연암 박지원”을 떠올렸을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북학파”, “실학”, “열하일기” 등 역사책에서 배웠던 딱딱한 단어들뿐이었다. 누가 머리 속에 주입이라도 한 듯이, “연암 박지원”에 대해 서술 방식은 모두 천편일률적이었으며, 나 역시 “연암 박지원”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뻔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암 박지원”은 명망 있는 양반가의 자제였으나, 그의 젊은 시절은 그리 순탄치 못 했다. 명문가의 자손이었음에도 연암의 삶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으며, 당시 연암이 속한 조선이라는 나라는 관료의 부패와 부도덕이 만연한 암울한 사회였다. “연암 박지원”은 뛰어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등용되어 정계에 진출하는 양반으로서 정해져 있는 형식적인 삶이 아니라, 잘못된 것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학자로서 사는 것을 택하였다. …(생략)

처음 접하는 입문자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면, 박지원 산문 작품은 처음에 낯설지만, 특유의 비유와 사례를 통해 작가의 의도에 대한 이해도가 점차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와 닿았던 산문 작품 중 하나는 `잊어야 이루리라`였다. `잊어라 이루리라`편에서 다루고자 한 주제는 부귀, 영예 등과 같은 세속적으로 얻게 되는 사소한 결과물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잊고, 자신의 길에 매진하여야만 가슴 속에 품은 깊은 뜻을 끝내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짧지만, 그만큼 주제가 명확하여 머리 속에 뚜렷이 각인된 작품이다. 20대들에게 인기가 많은 자기계발서에서는 부나 명예 등 부수적인 것들을 목표로 삼지 말고, 더 높은 이상과 비전을 품으라고 쉽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다룰 때에는 본질을 잊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들을 다루어 추상적이고, 피상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의 작품을 읽었을 때,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시 돈, 명예가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자기계발서나 연암의 산문 작품에서나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같았지만, 자기계발서가 누구나 아는 뻔한 내용을 깊은 고찰과 고민 없이 내뱉는다는 느낌이었다면, 연암 박지원의 산문 작품에서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연암 박지원의 `잊어야 이루리라` 작품을 두 번째로 읽었을 때에는 머리 속에서 공감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꿈이라 여기고, 치열하게 준비했던 기업 입사에서 미끄러져, 탈락 통보를 받게 된 지금 이 순간, `잊어야 이루리라`는 역설적이지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다잡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갈망했던 기업에 끝내 합격하지 못 하고, 다시 1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이 비참하였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그 기업에 왜 들어가고 싶은지, 왜 그 기업이 나의 꿈이 되었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잊어야 이루리라`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매우 역설적이다. 하지만, 그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혜택, 주위의 시선 등과 같은 것은 ‘잊어야 할 대상’이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기업에 입사하고자 하는 나의 초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상황이 매우 어렵고, 탈락의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 또한 잊어내고 털어내야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그 기업에 기필코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암 박지원 산문 작품인 `잊어야 이루리라`는 이러한 점에서 나의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연암 박지원 산문 작품에는 `잊어야 이루리라`와 같이 연암 개인의 생각을 다루는 작품들도 다량 포함되어 있고, 연암의 학문에 대한 자세, 지식으로서의 가치관, 세계관이 담겨져 있는 작품들도 많다. `잊어야 이루리라`와 같은 산문 작품을 읽으면서 개인 대 개인으로 연암의 깊은 통찰력으로 인해 치유되고, 응원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반면, 연암의 학문관, 가치관 등에 대해 깊이 다룬 작품에서는 연암이 왜 북학의 선두주자로서 청의 발전된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안은 연암 박지원과 연암의 작품인 `양반전`, `허생전`, `호질`을 같은 선상에서 연관 짓지 못 하고, 별개로 여겼으나, 연암의 산문 작품을 읽고 나서는 연암의 의도를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연암의 가치관은 내면의 선입관과 편견을 내려 놓고, 사물의 변화를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사물에 처음부터 주어진 ‘이름’이나 특성을 고정된 것으로 여기고, 이를 토대로 한 선입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연암의 생각이었다. 사물은 고정된 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과 내부적인 요인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를 부정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면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암의 이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학자는 그 당시 조선에서 드물 정도로 많지 않았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선비의 나라’인 조선에서는 ‘변화’를 인정하기 보다는 사물 그 자체의 영원 불멸한 ‘본성’에 더 관심을 기울였고, 그로 인해 ‘이기론’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기론’ 자체가 조선의 성리학이 발전하고, 융성하게 된 결과물이었지만, 대다수의 조선의 선비들이 ‘성리학’이라는 학문 자체만을 옳다고 여기고 이와 다른 생각들을 배척하게 됨에 따라 폐단이 발생하게 되었다. 청나라 강희-옹정-건륭 세 황제의 제위 기간을 통해서 청나라는 유례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고,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자체적으로 개혁을 통한 발전을 꾀하고 있을 때, 조선은 한 걸음 더 앞서나가지 못 하고, 성리학의 틀에 발목 잡히게 된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이러한 조선의 현실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 하였다. 고여 있는 물이 썩듯이, 연암은 발전과 변화 없이 정체되어 있는 조선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연암 박지원은 현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발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의 변화를 위해 연암이 생각한 방법은 “법고창신”이라는 정신이었다. “법고창신”이란 토대로 옛 것을 토대로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발전을 이룩하자는 것이다. 조선 말기에 “온고지신”을 앞세워 추진되었던 개혁보다 훨씬 일찍 연암 박지원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산문 작품을 통해 옛 것만을 고집하는 태도와 옛 것을 아예 저버리고 새로운 것만 추종하는 태도 모두를 경계하며,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암은 청나라로의 연행을 떠나고, 청나라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충격 받은 것들을 `열하일기`에 옮겨 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병자호란과 정자호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루고 난 조선의 상황은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정신적으로는 황제국이었던 명나라의 멸망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다. 이방의 오랑캐로 대우하지도 않았던 청나라 만주족에 의해 명나라가 제패되고 조선마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기에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과 제도를 본받고 배우자는 주장은 조선의 주류층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 주류층에서 방향을 달리 한, 조금은 특이하고 색다른 생각을 하는 선비였다. 그의 생각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그 당시 보수적인 양반층들에게는 매우 요망하고 불충한 것이었을 것이다. 현재에도 세상을 뒤엎을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어려운데, 몇 백 년 전 조선에서는 연암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연암의 산문 작품에서는 변화를 발전을 갈망하는 연암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연암의 산문을 통해 연암이 왜 북학을 주장했는지, 조선의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가히 주목할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