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을 읽고

오만과 편견을 읽고
안녕하세요. 제가 있는 이곳은 이제 막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서늘하게 파란 하늘이 당신과 저 사이의 시공간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히 먼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나무의 잎들은 바람의 입김에 떨어질 갈색 메마른 종잇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생명에서 떨어져 나온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푹신한 길이 되고 편안한 향이 될 테죠.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작품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제 주인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도록 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마치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생명의 잔재들이 싱그럽던 나무를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게 하듯 말입니다. 당신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처음 이름이 ‘첫인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오만과 편견’이란 제목은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사회적 인습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만 성숙해서 결혼에 이른다는 당신의 생각을 반영한다고…(생략)

사람이었죠. 위컴에게도 정당한 사람이었고 사랑에 서툰 남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인상과 행동과 소문으로 서로를 알게 됩니다. 살다보면 다아시처럼 사람들에게 잘못 판단 될 때도 있고 엘리자베스처럼 내가 다른 사람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오해는 갈등을 빚고 사람을 슬프게 만듭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죠. 사람들이 서로 받아드리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을 볼 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물질적인 것으로 많이 판단을 합니다. 사실 당신의 소설도 그러한 면은 있죠. 엘리자베스가 위컴의 훌륭하지 못한 인격을 알기 전인데도 그가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와 거리를 유지하라는 숙모의 말을 따릅니다. 저는 그 부분에서 세상과 타협하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결국 그녀의 속물적인 어머니와 그녀의 차이는 가지고 있는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 이란 명제를 당신의 소설에서 보았습니다. 물론 당신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많은 동화나 전설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이 저를 사랑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만듭니다. ‘사랑이 무엇 인가요’라는 진부한 질문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랑에서 조차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신께서 하와를 주실 때 그녀는 아담의 오직 한 여자였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여인이자 한 몸인 그녀이기에, 그녀가 내민 금지의 과실을 베어 무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가 더 쉬웠을지 모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두 남녀 사이에 사랑이 있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들이 외부조건의 따짐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선악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축복이 아니었을까합니다. 지금은 수많은 남녀가 쉽게 만나선 헤어지고 두 사람의 마음 외에 많은 것을 따집니다. 지금의 사랑이 전적으로 때 묻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삶의 ‘행복’이란 이름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삼십대에 속물이 되느니, 차라리 이십대에 속물이 되어 봉을 잡아라.’라고 가르치는 실용서적들을 자주 접하곤 한다는 것을 당신이 아신다면 저의 혼란스러움을 이해하실 겁니다.
외모와 경제력 외에 또 한 가지 우리가 결혼에서 고려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라온 배경이죠.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아내로 맞이하기에 주저한 것은 그녀의 가족들의 성향도 한 몫 하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교양이 없고 그의 아버지는 그들을 방관했습니다. 한사람이 그 가족으로 말미암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야 할 때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또한 그것이 그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하고 서로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되게 하고 맙니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은 그 사람을 만드는 법이므로 우리는 간과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사랑을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외모, 경제력, 자라온 환경, 겉으로 드러나는 인격이라는 잣대가 과면 옳은 것일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과 결혼은 어떤 것인가요
재력가인 빙리가 마을에 온다는 소문을 들은 베넷가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남자에 대해 돈이 많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딸들은 설레어 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찬성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부끄러울 정도로 묘사하신 것 같습니다. 빙리는 그 집의 제일 아름다운 큰딸과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죠. 이 두 쌍은 고전적인 동화의 왕자와 공주의 만남인 듯도 합니다. 동화의 왕자와 공주 같다는 말이 다소 비꼬임으로 들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저의 심술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만큼 그 커플들은 이상적인 결혼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