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태평천하를 읽고 나서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읽고 나서
채만식의 태평천하 역시 진형적인 가족사 소설이다. 윤 씨 가문의 4대에 걸친 가족연대기 서술을 통해서 세대 갈등은 물론 한말에서 1930대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의 변천사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경제적으로는 우세하지만 신분적으로 열세했던 윤직원의 가계가 그 경제적인 부를 어떻게 이루어서 신분적으로 상승하게 되었으며 또 대를 이어갈수록 삶의 양식과 사고가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가란 문제를 역사의 변천과 결부하여 혹은 풍자적인 어조로 흑은 해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그 변천사를 그리면 다음과 같다.
도표에서 보듯 이 작품은 윤 씨 가의 5대가 다루어지고 있으나 서사 단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I대부터 4대까지다. 1대인 윤용규는 이미 작품에서 죽은 전세대의 인물이지만 계유년(1873) 전후 구한말의 사회적 혼란기에 윤 씨 가를 새로운 벼락부자…(생략)

에 의해 죽게 된 한말시대를 극악의 시대로 보아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버려라!’고까지 저주하는 반면, 일제에 의한 식민지시대를 그야말로 ‘태평천하’로 예찬한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오. 목숨은 파리 목숨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하게 살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하는 것이여, 태평천하 ! ’
이처럼 그는 한말시대를 저주받아야 할 폭력사회로 규정하고, 반면에 일제시대를 이상적인 황금시대로 이해하는 나머지 자신의 안전을 동요시킬 어띤 사회적인 변화도 거부한다. 때문에 그는 사회적인 통제 기관인 경찰의 무도장 건설 비용 등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불로소득의 지주계층과 일제의 화해적인 결탁 관계나 공생 관계가 시사된다. 뿐만 아니라 안전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손자인 종수와 종학이 군수와 경찰서장이 되도록 희망한다. 어쨌든 이런 두 시대에 대한 태도로서의 배격과 화해의 상반하는 이중성은 가계와 가족의 안전만을 꾀하려는 철저한 가족주의와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가족 안전주의와 돈을 지킴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양복 청년` 또는 ‘권총청년` 이란 독립군의 불안한 내방을 피해 서울로 이사까지 한다. 한편 윤두섭은 또한 그의 신분적이고 정치적 열세와 취약점을 보완하려는 의식을 강하게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문벌의 천박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가족보로 족보를 도금하고, 몰락한 향교를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직원이란 양반 벼슬을 살 뿐 아니라, 천민의 부와 양반의 혈통을 교환하는 양반결혼을 성립시키게 된다. 또한 그는 실속있는 양반으로서의 귄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손자인 종수와 종학으로 하여금 군수와 졍찰서장이 되도록 주선한다. 이렇듯 돌변한 양반으로 승격한 그가 아전의 문중 출신인 며느리를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행위나 그 역시 ‘짝 찢을 년` , ‘잡어뽑을 놈` 등의 상투적인 상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자가의 신랄한 아이러니와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3대인 창식은 재산 상속의 권리를 그 아들 대에 빼앗기고 준금치산자로서 무시되는 존재이며, 인장을 위조하여 마작과 축첩행위 같은 호사스런 향락생활에만 침몰하는 인물이다. 공익사업에는 전적으로 외면하는 향락적이고 낭만적인 부잣집 아들의 한 유형이다. 4대의 종수 역시 군수가 되라는 조부 윤직원의 소망과는 달리 난봉이나 피우며 가산을 탕진하는 점에서는 그 부친인 창식과 다름이 없다. 다만 일본의 법과대학에 유학중인 수재 종학만이 윤씨 가문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매우 특이한 존재다. 그는 형 종수와는 달리 수재이기 때문에 그의 조부인 윤직윈으로 하여금 종학이 경찰서장이 되어 가계의 장래를 적극적으로 번영케 할 후손임을 확신케 하는 인물이다. 그러한 종학이가 정작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피검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가족주의적 이상에 대한 반역으로 본 윤직원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착착 깎어 죽일놈! 그놈을 내가 핀지 하여서 백년 지녁을 살리라구 헐껄 ! 백년지녁 살리라구 헐테여.오냐 그놈을 삼천석꺼리는 직분하여 줄려구 하였더니, 오냐 그놈 삼천석꺼리를 톡톡 팔아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놈 잡아가두는 경잘서다가 주어 버릴껄! 으응, 죽일놈! ’
이러한 윤직원의 증오와 매도는 사회주의 그 자체에 대한 이념적인 혐오감에서라기보다는 가족의 안전만을 고집하는 그의 열망의 경로가 철저하게 붕괴되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태평천하는 이처럼. I9세기 말과 20세기 초 3O년 동안 이 땅의 역사적 및 사회적 지각 변동 속에서 한 가족의 기복(起伏)의 운명을 작가 특유의 풍자적인 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