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을 읽고나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나서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을 안다고 생각한다. 나도 전태일을 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읽어보려고 했던 전태일 평전을 이번 계기를 통해 읽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인터넷 기사에 든 단 몇 줄의 문장을 보고 사건의 전말을 모두 꿰고 있다고,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만 보고 그 소설을 읽었다고 말하는 격이었다. 책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춥다. 전태일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춥다’였다. 그의 마지막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이다. 남동생 태삼이에게 고학을 가르치고자 서울에 상경해, 식모살이를 위해 출가한 엄마를 찾기 위해 어린 여동생과 서울에 상경해 전태일은 추위를 경험했다. 전태일에게 서울은 뻬쩨르부르그만큼이나 추운 도시였을 것이다. 전태일은 일생동안을 추위 속에서 살았다. 그것은 시베리…(생략)

히 희생되어갔다. 혹자는 한강의 기적이라 말한다. 혹자는 박정희를 영웅이라 말한다.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인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로 찢어지게 가난한 거지들로 넘쳐났다. 그렇다고 거지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일파든 아니든 돈이 많은 부자들도 있었다. 부자들 중에는 공장 주인도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돌아가는 공장 말이다. 공장들은 열심히 돌아갔다. 노동자들은 각자 공장의 부품이 되었다. 기계화된 인간들은 ‘밑지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노동을 통해 남는 거라곤 직업병이나 황폐화된 심신 정도이다. 어느 날 터져 나오는 각혈만이 지옥 같은 삶의 종지부를 암시할 뿐이다. 황무지의 뿌려진 생명의 씨앗들은 자본주의의 마수에 걸려 희망의 가지도 잘린 채 죽음을 위해 산다. 노동자들이 짜낸 열매는 가진 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임무를 완수한 소모품들은 페기처분 된다. 부자와 빈자는 가장 확실한 신분이다. 그들은 철저히 정반대의 삶을 산다. 부자와 빈자의 운명은 하늘이 정해놓은 걸까 전생에 나라를 구했으면 부자로, 나라를 팔아먹었으면 빈자로 태어나는 것일까 무엇이 절대적 간극을 형성해 극과 극의 삶을 결정한단 말인가 현대국가는 법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법은 인간은 존엄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천부인권을 부여받아 존엄한 존재일까 아니면 인간이 인간을 존엄하다고 생각해서 존엄한 존재가 된 것일까 먼저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존엄할 순 없다. 존엄성이란 개념 자체가 인간의 인식 체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 존재 이전에 존엄성이 존재할 순 없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이 낳은 생명체이다. 생명이란 존엄한 것이다. 때문에 존엄하지 않은 인간도 없고, 개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 민족시인 고은은 전태일의 죽음을 접하고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시인은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은의 ‘화살’은 시대를 관통한 화살에 대한 격정적 울음이었다. 그리고 화살은 어느 청년의 이야기기도 했다. 역사의 기록된 인물의 대부분은 삶의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전태일은 죽음의 업적으로 기록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란 유언을 남겼다면, 전태일은 나의 죽음을 알리라고 말할 만큼 기존의 역사적 인물들과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화려한 업적을 남겨 조명받는 주인공이라기 보단 뒷골목에 낙서에 기록된 영웅담처럼 전태일은 신화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전태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왜곡된 정보를 지닌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정확히 전태일을 알아야 한다. 전태일의 죽음이 지닌 적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태일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먼저 전태일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 투사였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그림에서처럼 전태일은 노동자를 단결하여 이끌면서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사회는 전태일의 꿈을 외면하고 무시했다. 역사적으로 전태일과 비슷한 인물을 꼽으라면 동시대에 살았던 체 게바라를 꼽을 수 있다. 알베르토 코르다는 찍은 게릴레로 에로이코는 체 게바라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혁명가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사진 속 체는 고뇌로 가득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나는 전태일이 평소에 이런 눈빛을 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전태일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항상 고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증언할 정도니 말이다. 이는 고통 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인간적 연민, 노동자들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의로운 가슴이 만든 눈빛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