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비타민 플러스를 읽고

수학비타민 플러스를 읽고
수학비타민... 언뜻 들으면 고리타분함과 상큼함이 어색하게 결합된 이상한 단어다. 특히 나에게 수학은 듣기만 해도 저 뒷목부터 아려오는 불쾌감이 있는 단어인데, 비타민같이 듣기만 해도 귀가 청결해지는 단어와 결합하는 게 심히 거슬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고는 나는 세상 곳곳에 녹아있는 수학을 접했고, 이 책은 세상에 녹아내린 수학을 나에게 푹푹 떠먹여줬다.
나도 한 때 저자처럼 세발낙지가 발이 세 개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저자는 국제회의에서 이 사실무근인 정보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나는 책의 초입부터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인도 잘 모르는 ‘세(細)발 낙지를 어떻게 외국인들이 알고 망신을 주었을까’ 라는 물음의 정답은 옥토퍼스(octopus)라는 영어에 담긴 숫자로 octopus에서 oct가 8을 의미하는 것처럼 숫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발견할…(생략)

들에게 우주는 여전히 도달하고 싶은 미지의 영역이다. 1974년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구상성단 m13에 마이크로파를 보냈으며, 이 메시지는 겉부터 속까지 수학으로 이뤄졌고 이진법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 이유가 재밌다. 만약 어떤 행성의 외계인이 손가락이 다섯 개라면 그들은 당연히 5진법을 쓸 것이지만 0과 1을 기본수로 하는 이진법은 가장 기본이 되어 다른 진법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이진법을 이해하여 지구에서 보낸 메시지를 판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보내봤자 무슨 답장이 올까 아레시보 메시지에는 원소의 원자번호, 화학식과 구조, DNA 이중나선 구조와 염기쌍의 개수, 인간의 모습과 신장, 세계의 인구수, 태양계에 대해 이진법으로 기록되어 보내졌는데, 이 메시지가 m13에 도착하기까지 250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수학은 또한 실용적인 놀이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한 친구가 낸 겉으로 는 간단해 보이지만 몇 십 분간 붙잡고 씨름해도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를 접했다. 그때 해결하지 못한 문제...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그 문제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seven bridges of Knigsberg)라고 나온 것을 보고는 친근했다. 더불어 그 친구에 대해 살의를 느꼈다. 풀 수 없는 문제였다.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유형의 문제는 일필휘지라고 하는 즉 한붓그리기를 말하며, 한 점에서부터 연필을 떼지 않고 모든 변을 중복되지 않게 지나면 된다. 오일러는 이 문제에서 같은 다리를 두 번 건너지 않고 모든 다리를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한 점에 연결된 변의 개수가 홀수인 경우를 ‘홀수점’ 이라고 하며, 한붓그리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홀수점이 없거나 두 개여야 하는데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에서 네 개의 점은 모두 홀수점이기 때문에 같은 다리를 두 번 건너지 않으면서 모든 다리를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한붓그리기를 단순한 문제풀이 정도로만 알면 곤란하다. 한붓그리기는 실제 활용도가 높다. 예를 들어 청소차를 운행한다고 할 때 한붓그리기를 이용하면 보다 효율적인 청소가 가능하다.
수학은 예술 속에 깃들어 있다. 예술의 여왕이라 불리는 음악에서의 음정은 만물을 수로 설명하려 했던 피타고라스가 음정 역시 수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두 현의 길이의 비가 간단한 숫자로 표현될 때 현을 튕기면 어울리는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원래 현을 기준으로 다른 현의 길이가 3/4이면 도와 파처럼 4도 높은 음이 난다. 또 길이가 1/2이면 도와 한 옥타브 위의 도처럼 8도 높은 음이 난다. 예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미술에도 수학은 있다. 원근법에서는 멀고 가까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3차원에서는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 2차원 그림에서는 한 점에서 만나도록 그려진다. 수학에서 원근법과 관련된 것이 사영기하학이고, 이 사영기하학의 무한원점이라고 불리는 서로 평행한 직선들이 공유하는 점이 미술에서의 소실점과 같다. 사영기하학을 모를지라도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사영기하학으로 인해 미술사가 큰 한걸음의 도약을 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수학은 역사와 함께 살아 숨 쉰다. 옛날 이집트에서 홍수의 범람으로 지워진 땅의 기준선을 작도할 때, 피라미드를 건축할 때의 황금비와 파이의 활용, 중국에서 거북의 등에 새겨져 있던 마방진까지 수학이 존재하지 않은 곳은 없다. 수학에 대한 내용은 옛 조선시대의 홍정하가 지은 구일집이라는 책에도 나와 있으며, 그 중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면 중국에서 조선을 방문한 중국의 대표적인 수학자들 중 한 사람인 하국주와의 대결을 빼놓을 수 없다. 수학 실력을 겨루기 위해 하국주는 홍정하에게 방정식 문제를 냈고, 홍정하는 계산 도구인 산목을 사용하여 그 자리에서 막힘없이 풀어냈다. 홍정하는 하국주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난이도 높은 문제를 냈다.
‘구 모양의 커다란 옥 안에 내접한 정육면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두께는 4치 5분이고, 무게는 265근 15냥 5전이다. 이 옥의 지름과 정육면체의 모서리의 길이를 구하여라.’
하국주는 다음 날 답을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역시 한국인은 이런 수학적 분야에서 자랑스러울 정도로 비상하다. 다만 주입식 교육으로 자라지 않는 창의력이 문제지만...... 수학 앞에서 이 세상은 너무나도 작다. 이 책에 소개된 `파워즈 오브 텐(Powers of te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큐멘터리는 두 남녀가 시카고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상적인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갑자기 카메라가 줌 아웃 되면서 남녀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한다. 두 남녀는 사라지고, 지구가 점이 되고, 태양계가 콩알크기로 변하고, 끝내 은하까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시 줌 인 되는 카메라는 남자의 손 안으로 들어가면서 세포가 보이고, 세포의 핵, 원자, 원자핵까지 선명히 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토록 수학으로써 세상을 보면 인간은 점들이 모인 하나의 티끌일 뿐이다. 쓸데가 없다고 생각했던 고리타분한 수학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일상, 생각 없이 보냈던 시간 속에 이렇게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으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생활 곳곳에서 예술, 자연, 역사까지 수학의 기둥은 세상을 지탱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과일장수가 쌓아올린 과일에도 수학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제껏 수학으로 만든 발판 위에서 살아가며 수학을 잊은 꼴이니 기분이 묘했다. 수학은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숫자들의 까마득한 덩어리가 아니라,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고 세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비타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