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를 보고나서

올리버 트위스트를 보고나서
찰스 디킨즈(1812-1870)의 원작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됐다. 올리버는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빈민수용소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노동을 하며 지낸다. 올리버는 배가 고픈 아이들 사이에서 제비뽑기로 뽑혀서 죽을 더 달라는 얘기를 했다가 벌을 받고 쫓겨나 장의사 보조로 팔려간다.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온 올리버는 어린 아이들을 모아 소매치기로 훈련시켜 벌어들인 수입으로 먹고 사는 앵벌이 영감 페이긴의 집에서 살게 된다. 아이들을 따라 거리에 나갔다가 어느 신사의 지갑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법정에 까지 가지만 진범은 따로 있고 누명이었음이 밝혀진다. 올리버는 신사의 동정과 신뢰를 받고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사실 올리버의 어머니는 그 신사의 조카딸이었음이 뒤늦게 밝혀지지만 올리버는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소매치기 빌의 음모로 다시 끌려가서 도둑질하는데 따…(생략)

1) 1819년 9세 미만 아동의 노동 금지, 16세 미만-노동시간 12시간으로 제한

2) 1831년 21세 미만 야간작업 금지, 18세 미만-노동시간 12시간, 9세 이하 고용금지

3) 1833년 11세 미만 1일 8시간/주당 48시간으로 노동시간 제한, 18세 미만은 1일 12시간/주당 69시간으로 노동시간 제한

라서서 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올리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이 장면은 산업화로 인해 생산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업혁명 이전에도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집이나 들판, 남의 집 도제로 일을 했지만 산업화 시대에는 일터가 공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한 변화다. 그렇다면 근력도 약하고 숙련된 기술을 훈련받을 기회도 없었던 어린아이들이 산업화 시대에 어떻게 노동력으로 동원될 수 있었을까
영국에서 18세기 말에 시작되어 19세기에 전개된 산업혁명은 노동의 조직방식이나 생산방법에서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면방적과 방직 분야가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가내 수공업이 공장제로 바뀌고 사람의 근력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발명되어 활용됐다. 산업혁명 시기 기계를 움직인 중요한 동력은 석탄을 이용한 증기력이었지만 산업혁명 초기에는 수력을 동력으로 삼아 방적기를 돌렸다. 이발사 출신이었던 아크라이트는 수력을 이용한 방적기를 발명(1768)한 후 공장을 지어 큰 돈을 벌었다. 수력방적기를 쓰는 공장은 물을 쉽게 끌어 쓸 수 있도록 강가에 지었다. 그래서 영어 단어 중 물방앗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밀(mill)이 공장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됐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기계가 활용되고 노동과정을 세분하는 분업 생산 방식을 도입한 결과, 그동안 숙련된 기술과 힘이 노동력의 중요한 조건으로 여겨지던 것이 점점 변화했다. 공장에서 어린 아동노동을 고용하고 그에 따른 문제가 자주 논란이 됐던 것도 그때였다. 자본주의를 비판한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아동노동의 참상을 고발했다.
1) 1819년 9세 미만 아동의 노동 금지, 16세 미만-노동시간 12시간으로 제한
2) 1831년 21세 미만 야간작업 금지, 18세 미만-노동시간 12시간, 9세 이하 고용금지
3) 1833년 11세 미만 1일 8시간/주당 48시간으로 노동시간 제한, 18세 미만은 1일 12시간/주당 69시간으로 노동시간 제한
이렇게 여러 차례의 걸친 공장법의 제정과 개정으로 아동노동 시간이 제한되었고 그 효과로 성인의 노동시간도 줄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일일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지키려는 캠페인은 19세기 노동운동의 중요한 이슈였다. 산업혁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면공장을 중심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공장 감독관 임명을 골자로 하는 공장법 제정운동이 진행됐고 소설이 쓰여진 1830년대에는 일일 10시간 노동제 쟁취가 노동운동의 목표였다.
처음에 올리버가 살았던 곳은 고아원인 동시에 빈민을 수용하는 구빈원이었다. 먹을 것을 더 달라고 했다가 쫓겨날 정도로 열악한 수용 환경은 당시 실재했던 구빈원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 빈민을 구호하는 기관이라는 구빈원이 왜 이런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까 영국 사회에서 구빈원은 오래 동안 있어왔지만 그 문제점이 자주 언급되게 된 것은 1834년 신구빈법(New Poor Law)이 의회를 통과한 이후였다. 디킨즈가 소설 앞 부분에서 통렬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비판했던 것도 바로 신구빈법이었다. 신구빈법이란 농촌의 공동체적 구조에서의 구호방식과는 달라진 산업화 시대의 조건에 맞추어 새로 만든 빈민구제 정책이다.
신구빈법을 제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산업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빈곤문제가 새로운 양상을 띠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빈민의 상태로 떨어진 사람의 수도 늘고 계층간의 갈등도 고조되었다. 신기술의 도입, 경기변동 등으로 수공업자나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분노했다. 기계화에 대한 저항이었던 러다이트(the Luddites : 1811-12년 일어났던 기계파괴)운동, 1830년대 농촌 지역에서 자동탈곡기를 부수고 농장주를 위협한 스윙폭동 등에서 그러한 분노가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이에 대응해서 빈곤의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원인보다 개인의 나태로 인한 결과라고 보았던 당시 영국의 지배층은 사회혼란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신구빈법을 제정했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노동능력이 있는 경우에는 구호를 제공하지 말 것
2) 구호를 받으려면 빈민 수용시설 즉 구빈원(workhouse)으로 들어갈 것
3) 구빈원의 생활조건은 노동자의 최저 생활수준보다 낮게 유지할 것 등이었다.
당시 이러한 신구빈법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1) 빈민구제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을 줄임으로써 세금 부담을 줄인다.
2) 수용시설을 운영함으로써 거리의 거지를 줄인다.
3) 가난한 사람들이 근면하게 살도록 자극을 줄 수 있다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구빈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가난한 사람들, 특히 경기변동에 따른 실업의 위협 아래 언제 구호 대상자로 전락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갖고 있던 노동자들은 신구빈법의 내용에 분노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구빈원은 가난이라는 죄목으로 갇힌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민으로서의 권리란 사라지고 가족은 함께 살 수 없이 남녀노소로 나뉘어 수용됐고 음식과 대우는 형편없었다. 가난을 스스로 부끄럽게 만듦으로써 근면한 노동자를 육성한다는 정책 입안자의 의도는 노동대중을 최소한의 안전대책도 없이 사회적 파산자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입법을 제정한 당시 의회는 어떤 곳이었나 1830년대 영국 사회에서는 재산이 있는 지주나 도시의 상공업자 등 일부 층에게만 의회 선거권이 있었을 뿐 모든 계층의 여성이나 남성 노동자는 선거권이 없었다. 그러므로 의회에서 선거권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입장은 반영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의회에서 구빈문제에 대한 정책이 위와 같이 나온 것은 당연한지도 몰랐다. 19세기 말부터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가 추진되고 노동자 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등 의회 정치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 이전처럼 가난을 개인만의 책임이나 처벌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고 정책으로도 반영될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실업, 노후 연금 등 복지정책이 실시되는 등 미흡하지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방식의 변화는 공업 생산물의 엄청난 증가를 가져왔고 인류가 절대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분배의 불평등으로 인한 계층 간의 빈부 격차는 오히려 확대됐다. 영화는 올리버가 살던 고아원의 초라한 식사와 그곳을 후원하는 신사들의 기름진 성찬, 런던에 온 후 올리버가 살게 된 템즈강 남쪽 빈민가의 찌든 풍경과 북쪽의 부유층 거주 지역의 말끔한 정경을 대조시켜 보여줌으로써 빈부 격차의 문제를 시각화했다.
오늘날 서울에서는 강남이 신흥 부유층 거주 지역이지만 19세기 런던에서는 강남이 빈민가였다. 올리버가 런던에서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곳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세인트 폴 성당의 둥근 지붕이 바라다 보이는 템즈강 남쪽의 빈민가다. 올리버는 착한 낸시의 도움과 친척을 만나는 행운으로 그 슬럼가를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올리버가 떠난 후에도 또 다른 올리버가 그곳에 수없이 많이 살았을 것이다. 산업화는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을 가져왔다. 런던과 같은 대도시나 맨체스터 같은 공장 지역에는 인구가 과밀하게 집중됐다. 환기나 위생의 문제를 논하기도 힘들만큼 싸구려 임대 주택이 밀집된 이 공간은 농촌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남녀노소가 생활하는 공간이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범죄와 폭력의 온상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주민들이 고된 하루 일과를 보낸 후 돌아와 먹고 쉬고 다시 다음날의 노동을 준비하는 휴식처이기도 했다. 산업혁명의 중심 수도 역할을 이미 벗어난 현재의 런던에 가보면 이 지역은 말끔하게 개발되어 이 시기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발전소 자리에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들어서고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상연하던 글로브극장 등이 다시 만들어지는 등 관광지가 되었다.

반면 올리버의 구원자인 신사가 살고 있는 템즈강 북쪽의 주택가는 깨끗하고 넓은 거리, 번듯한 건물로 빈민가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신사의 집은 초생달 모양으로 둥글게 휘게 만들어 크레센트 양식으로 불리는 건물인데 18세기 조지 왕조 시대에 유행했던 고급 아파트 형태로 지금도 런던이나 바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에 묘사된 템즈강의 수질을 보면 산업화의 또 다른 어두운 면으로 환경오염을 들 수 있다. 페이긴이 아이들을 이용해서 모아온 보물 상자를 들고 도망치다가 다리에서 빠뜨리는 순간 클로즈업된, 한 치 밑도 보이지 않을 만큼 더럽게 오염된 강물은 환경오염과 도시화 및 산업 발전이 함께 진행되었음을 알려준다. 물질의 풍요만큼이나 깨끗한 물과 공기도 중요하다는 것을 산업화가 한참 진행된 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잃고 난 뒤였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당하게 되지만 어느 정도 계층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당시에도 고급주택가에는 상수도와 하수도가 설치됐지만 그로부터 발생한 생활 오폐수는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채 가난한 사람들이 그대로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템즈강으로 흘러들어갔다. 결국 먹는 물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드러나고 전염병 등의 원인이 되었다. 소설과 영화의 인물설정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인종적 편견의 문제다. 아이들을 도둑으로 훈련시켜 돈을 모아 살아가는 영감 페이긴이라는 인물은 소설에서나 영화에서나 전형적인 유태인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소설에서는 그가 유태인임이 명시되었고 영화에서는 얼굴 생김새나 돈을 밝히는 태도 등에서 ‘유태인은 이렇다’ 하는 대중적인 편견을 그대로 담은 방식으로 재현됐다. 이는 당시 영국 사회에 존재하는 반유태주의를 디킨즈가 별다른 고민 없이 내면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찍이 세익스피어도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을 유태인으로 설정한 바 있다. 소설을 연재한 후 디킨즈는 유태인 공동체의 항의를 받고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책으로 출판할 때(1858)는 페이긴에 대해 유태인(Jew)이라고 호명한 부분을 많이 삭제했다. 소수 인종에 대한 편견은 때로는 배타적이거나 위협적인 폭력, 더 심하면 인종청소라는 극단적인 해결책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은 2차대전 때 나찌 정권이 유태인을 체계적으로 살해했던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는 물론 허구와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그 상상력이란 것이 소수자에 대한 기존의 근거 없는 편견을 반복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사실 영화에서 페이긴은 탐욕스럽기는 하지만 사악하기보다는 능청맞고 귀여운 캐릭터로 나온다. 그는 더 늙고 힘없을 때 자신을 누가 돌봐줄 것인가 늘 불안해한다. 아이들과 무리지어 살던 거처로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다 뒤집어지고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실망하는데 똘똘하고 사려 깊은 어린 소매치기 재간꾼 다져(Artful Dodger)가 함께 살자고 제안하자 기뻐서 춤을 춘다. 올리버가 부유한 친척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인과 소년도 가난하지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서로 지혜와 힘을 모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변화로 인해 생산단위로서의 가족이 해체된 산업사회에서 혈연을 넘어선 대안가족의 한 형태로 유쾌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올리버의 장점은 산업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다루었지만 결코 우울하거나 절망감을 주지 않은 영화, 바로 그 점이 뮤지컬 [올리버]가 영화로서 사랑받는 비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