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를 읽고나서

일리아드를 읽고나서
예전부터 지인들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추천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여태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이번에 과제물로 제시된 『일리아드』를 먼저 읽었다. 욕심이 생겨 쌍을 이루는 『오디세이아』도 읽었다. 덕분에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두 작품을 읽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이제 작품에 대해 전반적인 것을 알기 위해 책 뒤에 있는 해설을 참조하면서 정리해보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문학의 대표작이다. 지금까지 이 두 작품이 오랫동안 후대의 사람에게 읽힐 수 있도록 살아남은 것은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다.
첫째, 처음부터 멸실되지 않고 계속 전승되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필사본으로 남겨져 살아남은 경우이다. 둘째, 처음에는 잊어졌거나 없어진 것이 후에 발견되어 살아남은 경우이다. 호메로스의 두 작품은 첫째의 경우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있…(생략)

옛 문체와 발랄한 새 문체를 필요에 따라 혼용하고 있다. 새 문체를 사용할 경우 옛 문체가 가질 수 있는 위엄과 품위가 손상될 우려가 있었고, 운율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문구들을 새 문체로 대체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상투문구와 형용사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시행의 첫 부분과 끝 부분에 상투문구가 반복된다. 음식을 나눠 먹는 절차 및 신에게 재물을 바치는 순서 등도 똑같은 구절로 반복되고 있다. 이런 것은 아마도 운율의 규칙을 맞추는 일종의 규격품이 아닐까 싶다.
셋째, 문체 중 추상적인 표현보다 생생한 감각적인 표현이 훨씬 부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바다에 대해서 “추수할 수 없는 바다”, “습한 바닷길”, “짠 바닷물”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넷째, 영웅을 표현하기 위해 저속한 것을 피하고 그 언행을 의도적으로 이상화하고, 자연 또한 이상화되어 있다. 전쟁터에는 여름과 겨울, 궂은 날씨와 폭풍 같은 게 없다. 일상이 아닌 영웅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호메로스가 사용한 비유들은 다양성과 생동감을 주기 위해 일종의 대위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이야기를 듣는 청자에게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상이한 사상들 간에 연관성을 찾아내서 심오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하게 한다. 비유에는 동물에 관한 것과 자연에 관한 것이다. 영웅을 맹수, 사냥에 비유한다. 양 떼를 습격하는 사자처럼 장수를 비유하고, 저돌적인 용기를 보이는 장수를 멧돼지로 비유하며, 비겁함을 사슴으로, 대담성을 파리로 비유한다. 또한 적군을 종횡무진 휩쓰는 장수를 홍수로 비유하고, 적군이 몰려와도 꿋꿋하게 버티는 장수를 바닷가의 암벽으로 비유하는 식이다. 서서시의 주체는 “인간들과 신들의 행적”이다. 그래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상호관계 속에 있으며 이야기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때 신들이 인간 세계로 개입할 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중적이다.
첫째, 친근과 소원이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에게 접근하는 친근함을 드러난다. 반대로 자신이 후원하는 영웅을 죽이려는 반대편 장수에게 꾸짖는 소원한 모습도 보인다.
둘째, 총애와 무자비이다. 아테나 여신은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이아와 그 아들을 총애하지만, 『일리아드』에서는 헥토르를 아킬레우스의 창에 죽도록 싸움을 유인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셋째, 자의(恣意)와 정의이다. 신들이 인간사에 개입하거나 자기들끼리 속이는 자의의 모습을 띤다. 반대로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을 왜곡하는 사람들을 제우스가 폭우를 내려 응징하는 정의를 보이기도 한다.
첫째, 호메로스가 그리는 인간은 살아 있는 전체이다. “살아 있는 영혼에 해당되는 낱말”이 없다. 프쉬케(psyche)는 “죽은 사람의 혼백”에만 사용되고, 육체를 의미하는 소마(soma)라는 것도 시신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호메로스적인 인간을 표현할 때 인간은 살아 있을 때가 아닌 죽어서야 영혼과 육체가 나눠진다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하나의 전체이다. 그래서 팔이 육체의 한 부분이 아니기에 “나의 팔”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감정과 행동 사이에 갈등이 없다. 행동이 곧 그 사람의 의식을 드러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호메로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갈등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 호메로스적 인간들은 철저히 현세주의자들이다. 술과 고기, 잔치, 무도회, 사랑, 달콤한 잠을 마음껏 즐기며 물질적인 향락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셋째, 호메로스적 인간들은 자신의 참모습을 비춰보는 양심이 아직 생성되지 않았기에, 오로지 명예만 중요하다. 그 명예의 판단을 동시대와 후세 사람들이 내려줄 “평판”이므로 그것만이 유일한 가치였다.
호메로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문자가 보편화되기 이전이기에, 독자를 위해서가 아닌 대개는 구송을 위해 씌어진 것이다. 그러나 각 지방마다 구송되던 여러 텍스트들을 한데 통일한 사람이 있었다. 알렉산드레이아의 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기원전 217~145)였다. 그는 여러 텍스트를 살피고 검토해서 교열본(校閱本)을 만들었는데 현존하는 호메로스 필사본의 원형으로 추정되고 있다.
첫째, 모티프의 차이다.『일리아드』와『오디세이아』를 이끄는 서사시의 모티프도 차이가 난다. 『일리아드』에는 “분노의 모티프”만 있지만, 『오디세이아』에는 “귀향자 모티프”, “선원 모티프” 등 복잡한 모티프가 내재되어 있다.
둘째, 압축시킨 시간의 차이다. 아키아오이족과 트로이아인의 전쟁은 9년 동안 일어났지만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50일간 발생한 것으로 압축했고, 20년 동안 귀향하지 못한 오디세이아의 여행을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40일간 발생한 것으로 시간을 압축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훌륭한 책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지루했음을 숨길 수 없다. 지루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첫째, 제우스를 비롯한 유명한 신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또는 영화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어느 정도 익숙했으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수한 신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아카이오이족과 트로이아인들이 전쟁을 치루는 과정 중 유독 신들이 총애하거나 무자비하게 대하거나 신들끼리 속임수를 쓰는 등, 신의 개입이 빈번해서 지루해졌던 것이다.
셋째, 수많은 신과 더불어 수많은 영웅의 가문이 하나하나 제시된 것도 책읽기의 지루함을 주었다. 유명한 장수의 가문은 이해하지만 이름 없는 장수의 가문까지 읽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넷째, 상투적인 문장과 절차였다. 규칙적인 운율을 위해 덧붙여진 것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왜 이렇게 똑같은 구절이 나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던 것이다.
다섯째, 개인적으로『일리아드』보다는 『오디세이아』가 훨씬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신의 개입이 빈번한 『일리아드』가 장황하고 지루했던 반면에, 『오디세이아』는 주인공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고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