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가 느려도 늦지않다를 읽고나서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않다를 읽고나서
항상 인연에 감사하고, 용서하며 살아라. 6년 전, 중환자실의 침실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께서 해주 신 말이다. 나이가 어려 중환자실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간호사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나를 꼭 봐야겠 다는 할아버지의 강력한 의견에 들어간 중환자실에서 할아버지께서는 내 손을 꼭 잡고 그리 말했었 다. 그때는 그저 그리 힘없이 누워계시던 모습이 무서워 고개만 끄덕대던 것 같다. 그렇게 중환자실 에서 근 3개월을 누워계시던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기적을 보여주시며 지금까지 정정하게 살아계신 다. 할아버지가 일반병실로 옮기던 날, 병문안을 오셨던 어떤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그동안 쌓은 덕이 이런 기적을 만든 것이라고.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 ‘인복’이 있으셨다. 한 달에 한번은 꼭 할아버지를 뵈러 오시는 분들이 계셨고 여름이 되면 항상 우리 집에 오셔서 지내 고…(생략)

것이다. 나는 언제쯤 사람을 존재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타인을 이용하려 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를 ‘아버지’라 부 르며 찾아오시는 아저씨. 아줌마께서는 할아버지께 받은 밥한 끼와 푼돈 때문이 아닌 ‘사랑’을 잊지 못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찾아오시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말하고는 한다. 그런 이유 없는 사랑을 주기엔 이 세상이 너무 어둡고 무섭다고. 왜 세상 탓을 하는가. 세상도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 따뜻하던 세상을 이렇게 무섭고 차갑게 만든 것은 우리라고. 신변을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기엔 무섭다면 주변사람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줘보자. 그러면 세 상은 우리 ‘덕분에’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 때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에게 사랑 한 줌 그 손에 쥐어줘보자. 그동안 너무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가진 않았는지, 사랑에 너무 인 색하진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인연에 감사하고, 용서하며 살라던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려 했던 게 아닐 까. 오늘 인터넷에 들어갔더니 6월 모의고사가 실시간 검색어 1위 였다. 알고 보니 오늘이 6월 모의 고사를 치룬 날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이 생각나서 연락을 해봤더니 항상 밝던 애 들이 생각 이상으로 축 쳐지고 조급해하고 있었다. 구구절절 길게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그랬다. ‘언니, 이번 모의고사 망했어요. 힘들어요, 할 게 너무 많은데 시간은 바쁘고 마음이 불안해요’ 그런 동생들에게 난 크게 뭐라 말해주지 못했다. 그저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라는 말 밖에 해줄 수 없 었다. 왜냐하면 내가 모두 겪어본 과정이기 때문에, 그 불안한 마음을 알기에 말해주지 못했었다. 지 금 그 아이들은 앞이 깜깜하고 막막할 것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속도 중독증’이 지배하는 삶 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는지 자신의 호흡을 한 번씩 지켜보며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해보라고. 그렇게 마음의 속도를 늦추라고 말이다. ‘속도 중독증’ 그 아이들은, 나는 아니, 우리 현대인들은 모두 속도 중독증에 걸려있는 걸지도 모른다. 빠른 일처리를 신봉하고 숨 막히는 스케줄 에 채찍질 당하며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우리. 이 책에선 노는 것도 명상이고 훈련이라고 한다. 온 전히 노는 것에 집중할 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아... 뭐해야 하는데’하며 마음 한 구석에 속 도중독증을 버리지 못하고 끝없이 불안해하며 노는 것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내일 해가 뜨 고 우울한 마음으로 정독실에 들어가 오늘 미처 끝내지 못한 모의고사 오답풀이를 하고 있을 동생들 에게 문자 한통을 보내주어야 겠다. ‘여전히 마음이 무겁고 초조하고 불안하다면 온전히 놀고 와 오 늘은 날씨가 좋다더라. 고3이라고 1년 내내 속도중독증에 시달리는 건 너무하잖니. 힘내고 너의 마음 에게 물어보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것은 아닌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그렇게 차분히 너를 돌아 보고 정리해봐’ 이 책에선 꿈이 없는 것보다 비참한 삶은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이 무척이나 공감했다. 지금은 간호학 과에 진학하여 간호사의 꿈을 꾸고 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내꿈은 환경학자 였다. 수자원 공사에서 일하며 독도의 해양물질을 연구해보고 싶었다. 지질과 해양에 대해 연구하고 탐사하는 내 모습을 상 상하며 느꼈던 흥분과 열정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합격한 환경학과의 입학을 거절하고 간호학과에 입학한 것은 친구들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꽤나 의외였다. 이유는 간 단했다. 현실적 문제였다. 아빠는 내 의견을 존중해준다고 하셨지만 지질을 연구하는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것에 대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셨고 그 불안에 3년 동안 꽤 장대하고 구체적으로 꿈 꿔왔던 내 꿈도 흔들려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접었던 내 꿈이 너무 생각났고 아 쉬웠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지금 나는 또 다른 ‘간호사’라는 꿈을 꾸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처 음 대학에 진학했을 때 너무 힘들었었다. 혼자 먼 대구로 와서 외로움은 극에 달했고 처음, 과도 생 각하지 못한 간호학과에 진학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너무 컸었다. 하지만 고통에는 모두 이유도 있지만 의미 또한 있다고. 이 책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고통이 다가오면 파도를 타는 사람이 파도에 저항하지 않고 파도의 힘을 이용하듯 고통을 이용해 흐름 따라 흘러가 보라고. 생각해보면 이 생활이 익숙해지고 힘들다는 생각을 지운 것이 순응하고 부터였던 것 같다. 집에 자주 갈 수 없다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기 보다는 그 외로움을 몇 달 후 갈 집에 대한 기대로 바꾸고 간호학과에 진학한 이상 간호사에 대한 꿈을 꾸며 그 운명과 고통에 순응하는 순간. 그때부터 고통은 고통이 아니게 되 었던 것이다. ‘당신을 소모시키는 필요 없는 일들을 잘라내세요’ 나를 소모시키는 일들은 무엇일까. 아마 과거에 대 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근심. 그것이 나를 소모시키는 필요 없는 일들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할 것 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현재이고 충실해야할 곳 또한 현실인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후회와 근심을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행복이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고 있을 때 찾아온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항상 현재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던 나에게 이 책은 많이 웃으며 살 라고 말한다. 웃음은 후회와 근심을 떨칠 수 있는, 현재에 깨어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동생들, 대학진학,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길. 20년이란 세월이 길다고 말할 순 없지만 짧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던 나의 길, 함께 그 길을 걸어주었던 동반자들. 앞으로 그 동반자들과 우주의 시간에 맞춰 더 걸어가고 싶다. 달팽이는 늦어도 늦지 않다. 나의 걸음 또한 늦지 않다. 더 이상 조급해 하지 않고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