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전을 읽고나서

양반전을 읽고나서
박지원의 신분은 양반이었다. 이것을 알고 읽었을 때와 모르고 읽었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알고 읽으니 박지원은 진정한 양반의 모습에 대해 고민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반전」에서 군수가 양반이 되고 싶은 부자에게 양반증서를 만들어 주는 장면이 있다. 그 증서에는 양반이 지켜야 할 행동 가짐이 적혀 있었다. 그 행동들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양반이 될 자격이 없어진다고 했다. 심지어 사소한 행동도 그 증서에는 일일이 적혀있었다. 모든 것은 그 증서의 내용대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반들은 정직하지 못하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박지원은 양반이 도둑이나 다름없다고 이 책을 통하여 말한다. 양반은 궁한 선비로 살더라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자기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밭을 김매게 하더라도, 농민들은 아무런 항…(생략)

불리는 사람 같았다. 탐욕스럽고 정직하지 못한 양반이 신선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은 정말 큰 착각 이었던 것이다. 증서를 본 뒤 양반의 실체를 파악하고 양반이 되길 포기한 부자가 더 지혜롭고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자가 처음에 원하던 대로 양반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해보았다. 양반이 되어서 이웃의 가난한 백성의 처지를 생각하고 도와주는 부자 양반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런 부자 양반이 될 수 있다면 보통 양반들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양반이 좋아보였다가 양반이 그런 것이라면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보다 자신만이라도 그런 양반이 되지 않고 더 좋은 양반이 되려고 결심했다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양반들은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맨주먹으로 아녀자들을 때리지 말며 종들이 잘못하더라도 족쳐 죽이지 말아야 한다. 말이나 소를 꾸짖으면서 팔아먹은 주인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병이 들어도 무당을 불러오지 말아야 한다.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한다. 식사하면서 국물부터 먼저 마셔 버리지 말며, 마시더라도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 밥상을 찧어 소리 내지 말며 생파를 씹지 말아야 한다. 아마 내가 양반이 된다고 해도 이 모든 것들은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이것들을 모두 지켰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진정한 양반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반으로서 가져야 하는 덕목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는 정신이라고 본다. 그 정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남에게 덕이 되고 모범이 되며 백성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나는 가끔 조선시대에 태어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양반이라면 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고 지금처럼 어려운 수학공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분 때문에 아무 노력도 없이 평생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먹고 놀기 좋아하는 부패한 양반들의 생각이다. 박지원은 부패한 양반보다 깨끗한 선비를 원했다. 진정한 양반이란 나 자신보다는 나라를 위하고 백성들을 위한다. 그러한 양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는 번성하고 망하지 않는다.
고구려와 통일 신라에서도 귀족들이 권력다툼 때문에 왕을 함부로 바꾸는 행동들을 했었다. 결국엔 그 두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귀족들이나 양반들이 백성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배부르기에 앞선다면 그들은 나중에 나라를 팔아먹기까지도 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신분제도는 물론 사라졌다. 양반도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현재 양반들은 정치인일 것이다. 정치인이 말로는 정책을 잘 지키겠다고 하지만 내면에는 오로지 탐욕스러운 마음만 품고 있다면 박지원이 풍자한 양반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이들 권력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부자가 생각한 신선과 같고, 또 박지원이 말하려고 한 진정한 양반의 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