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 -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친애하는 김용빈 양에게
붉은 해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분홍빛으로 곱게 물들은 하늘아래 검은 산밑으로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그 모습을 말입니다. 노을 녘 붉은 해의 빛은 그리 찬란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남은 빛을 겸손히 내뿜을 뿐이죠. 마치 빨간 보름달 같기도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이 용빈 양을 보는 듯 잠시 착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저는 당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제 이름은 쓰치구지 요코라고 합니다. 이름으로 짐작이 되겠지만 저는 섬의 나라이자 당신의 나라인 조선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용빈 양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저는 무척 괴로워하던 중 당신을 포함한 김 약국 이야기는 저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쓰치구지 가의 양녀로…(생략)

빈 양에게 저는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용빈 양에게 얼마간의 힘이 되어 줄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그저 그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또한 자신의 순간적 힘에 의해 저지른 죄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 셨습니다. 제 아버지 게이조는 그 말씀으로 자신을 죽인 살인자의 딸을 키우려고 했습니 다. "
저는 친어머니 미쓰이를 용서했습니다. 그 또한 저보다 많은 날들을 괴로움으로 떨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당신에게 그 마음이 어떠한지에 대해 깊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용빈 양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당신 손아래 동생인 용옥 양의 죽음에 대해 너무 비관하지 마세요. 저는 죽음에 대해 당신보다는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고, 바로 용빈 양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고통의 짐을 털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용빈 양이 그들을 기억할 때 용빈 양의 마음 속에서 영원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나라의 시인인 `천상병`의 시 `귀천`에서 그것을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이처럼 이 시인은 인생이 소풍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그들은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귀천하는 것입니다.
용빈 양! 당신의 동생 용란 양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야 할 듯 합니다. 용란 양의 광기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고 말입니다. 만약, 그녀가 미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녀에게 어쩌면 크나큰 고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관하여 자살하거나 괴롭게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그녀가 자살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자살기도를 해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용빈 양에게 바랄 것이 있다면 그녀를 따뜻이 잘 보살펴 달라는 것 뿐 입니다.
용빈 양 지금 당신의 집은 무너졌지만 언젠가 당신이 바로 세울 것이라고 저는 어렴풋 기대 해 봅니다.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말입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용빈 양! 꼭 희망을 되찾고 꼭 다시 일어서세요. 용빈 양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자는 믿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 당신께 붉은 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이야기를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바로 `유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혹시 `유빙`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유빙`은 해류나 바람의 작용으로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는 얼음입니다. 저희 나라인 일본에서도 `유빙`을 볼 수가 있는데 저는 기다하라 씨의 권유로 `유빙`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의 `유빙`이 아닌 불타는 `유빙`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용빈 양은 제 말을 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까 저는 `유빙`이 얼음덩어리라고 말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얼음덩어리가 불탄다? 이해 못 하실 게 분명하죠. 하지만 제가 본 `유빙`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지만 말입니다.
용빈 양 이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 할 수 없는 모순 같은 일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흔히 기적이라고들 말하죠. 네, 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제가 본 기적을 용빈 양도 믿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적의 힘을 믿고 희망을 가지세요. 당신을 바라보는 용란과 용혜를 위해서라도.......
의지에 불타는 `유빙`이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다가올 행복을 위해서...
저는 당신이 희망을 되찾고 당신과 더불어 용란과 용혜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길 바랍니다. 용빈 양 저에게 그 소식 들려주실 줄 믿고 저는 이만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가을의 문턱 그리고 불타는 `유빙`을 건네주고픈

쓰치구지 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