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 - 아저씨에게 돌의초상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xx입니다.
사월이면 학교 정원에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데, 요즘에 비가 자주 내려서 학생들의 들뜬 마음이 한 풀 꺾인 듯해요. 오늘도 새파랗게 돋아난 잎 사이로 비가 오고 있어 날씨가 꽤 쌀쌀해요. 사실 저는 평소에 친구들에게도 편지를 잘 쓰지 않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께 편지를 쓰려니 정말 어색해요.
??벚꽃, 창경원, 최 노인…….??
비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분이 차분해져서 그 일이 생각났어요. 몇 해 전, 아저씨께서 창경원에서 노인 한 분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보살펴 드렸잖아요. 비록 다음 날 저녁에 그 노인을 명동 성당 앞 벤치에 앉혀두고 그냥 돌아와 버리긴 했지만요.
아저씨, ??최순돌 할아버지?? 기억하고 있으세요? 창경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벚꽃 나무 아래에 혼자 앉아있던 그 할아버지 말이에요. 아저씨는 단순히 그 할아버지가 가족…(생략)

죄송스러웠어요. 작년 겨울부터 할아버지 집을 새로 수리했기 때문에 오월부터는 큰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살게 되었어요. 그래서 예전보다는 할아버지께서 덜 적적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그 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아저씨께서는 괜한 일을 했다며 후회를 했어요. 하지만 집까지 모시고 와서 경희 언니더러 할아버지를 깨끗이 씻기게 했죠. 아저씨도 할아버지께 약간의 동정심이 있었던지 목욕하는 모습을 쭉 지켜보고 서 계셨잖아요. 그리고 나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그렇게 아저씨와 경희 언니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하룻밤을 지냈죠. 다음 날 저녁, 아저씨는 할아버지께서 거실 바닥에 종이며 화분에 심어 둔 식물의 잎 등을 가위로 모조리 잘라 놓은 걸 보고 욕을 하시면서 화를 버럭 냈어요. 그리고 그 길로 아저씨는 할아버지를 데리고 시내로 가서 할아버지를 명동 성당 앞 벤치에 앉혀 두고 돌아섰죠. 하지만 도망가는 듯 집으로 돌아오시는 동안, 내내 불안해하는 아저씨 모습이 눈에 선해요. 솔직히 저는 아저씨의 진심이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러웠어요. ??창경원에서 할아버지를 모셔 오던 행동, 명동 성당 앞에 할아버지를 다시 내버려 두고 오는 행동.?? 저는 아저씨의 그러한 이중적인 태도가 현대인의 나약하고도 이기적인 모습과 일치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는 요즘 ??탑골 공원??하면, 여기저기 벤치에 앉아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생각나요. 왜 그 분들이 거기서 하루해가 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지 애처롭게 보일 때가 많아요. 또 한국을 설명할 때, ??효를 중시하는?? 이라는 수식어를 더이상 붙일 수 없을 것 같아 씁쓸해 질 때가 간혹 있어요. 이처럼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너무 각박해졌고 노인 소외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요. 이러한 오늘날 현실과 ??신고려장?? 이라는 상황은 정말 딱 들어맞아요. 반짝이는 현대 도시의 시내 한복판이 옛날의 깊은 산속과 전혀 다를 바가 없잖아요. 그렇죠?

우리 사회에 인간다운 정겨움이 넘치는 그 날까지……. 아저씨는 서울에서, 저는 대구에서 주위에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기꺼이 보살펴 드리며 보람 있게 지내요.

아참, 그리고 할아버지를 끝까지 보살펴 드리지 않은 게 저로서는 못내 야속하지만, 최순돌 할아버지는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시리라 믿어요. 그러니까 아저씨께서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그럼,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