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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님께
안녕하시오. 난 이 나라의 한 시민으로서 당신이 앞으로 처리할 일에 대해 한 마디 전하고 싶소. 그러니까 내가 말하려는 사건은 어릿광대 사건에 관한 이야기올시다. 아직도 재판은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그전에 재판관인 당신이 한번쯤은 그 사건에 대해 검토를 해보고, 또 생각을 해볼거라 생각해 이렇게 편지를 띄우는 것이오. 나는 무식한 농부에 불과 하는 사람인지라 이 편지조차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쓰고 있소. 어렵게 보내는 글이니 만큼 당신이 조금 더 성의 있게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오.
우선 나는 아까도 말했듯이 이 나라의 한 농부로 살고 있소. 당신은 나라의 중요한 일을 보는 사람이고, 또 그만큼 부유하니 내 말을 당신이 이해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소. 우리 마을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곳이라오. 그런데 요 근래 가뭄이 오래 가시지 않아 벌써 몇 년 째 배를 굶주리고 있는 지 모르오. 우리 마을만 이런 것이 아니오. 이웃 마을도 다를 바 없소. 우리 나라 사람들 꽤 부유하다 하는 당신들 같은 계층이 아니면, 일반 농민으로서는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기도 힘들다는 걸 당신은 알 수 있겠소? 우리는 이런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라가 무언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어 왔소. 하지만 몇 년 째 제 나라의 국민이 굶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아는지 모르는지 임금은 자기 배만 채우려는 심보가 아니겠소.
우리들은 임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소. 이것이 말이나 되오? 제 나라의 어버이가 죽었는데도 자식들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호화로운 임금의 세상과는 다른, 다 말라 쩍쩍 갈라지는 밭에서 그나마 물길을 찾으려 발버둥치던 사람들이니 임금의 죽음에 대해 눈물을 흘릴 겨를조차 없었다오. 이미 우리는 오래 전부터 딴 세상을 살아온 것이 아니오. 세관은 언제나 나올 것도 없는 땅에서 세금이란 명목으로 모든 것 가져가고, 그렇게 자기들의 배만 불리울…(생략)
뿐이었소. 너무 격하게 우리 이야기를 했나 보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현실이라오.
그럼 그 어릿광대 이야기를 해 보리다. 어릿광대의 이야기는 나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소. 왕궁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곧잘 수근대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오. 미리 말하건대, 나는 그를 감싸는 것이 아니오. 한 나라의 임금을 죽인, 사람을 죽인 살인범을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오. 하지만, 그의 죄는 법으로 다스려질 망정, 왕을 그렇게까지 죽여야만 했던 어릿광대의 한 만큼은 제발 풀어줄 수 있길 바라오.
우리 임금이 익살맞은 이들을 불러놓고 놀이를 즐겨했다는 걸 알고 있소. 어릿광대인 절름발이 개구리 또한 마찬가지였겠지요. 임금이 그들을 불러다놓고 그들이 부리는 재주에 즐거워했다면, 그것이 그의 백성인 우리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머리 아픈 나랏일을 보며 그 정도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대상은 필요했겠지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임금은 어릿광대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먹고 싶지 않아 하는 술을 억지로 먹여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대신들에게 보이는 것. 그것이 그로서는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몸도 성하지 못한 재주꾼으로 놀이감이 되는 것만으로도 서글픈 일인데, 이제는 술에 취해 버둥거리며 인간으로의 모습마저 무너뜨려야 한다니.. 한 번 생각해 보시오. 나는 그 생각을 하면 울화가 치밀고, 어릿광대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하며 눈물까지 다 나오려고 하오.
비록 대우받을 만한 인생은 아니지만, 어릿광대도 사람이라오. 만약 그가 자만과 허영에 가득한 왕궁에서의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서민들과 하루하루를 함께 했겠지요. 우리는 그를 그렇게 업신여겨 보고, 깔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맛보여 주는 웃음은 고달픈 일상에 즐거운 웃음을 주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활력소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릿광대도 강요받아 부리는 재주가 아닌 자신의 끼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마음껏 베풀었을 테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를 사람으로 대했을 테니까요.
임금은 자기 스스로 제 화를 자초한 겁니다. 어릿광대가 임금을 죽이면서 풀었던 그 한이란, 그만의 고통이 아닌 우리들, 우리 서민들의 오랜 세월동안 쌓이고, 쌓인 한이었던 것이오. 높은 상류층에서 많이 배우고, 배불리 먹고, 잘 산다고 하여 마음까지 온순하고, 따뜻한 건 아니오. 오히려 그들은 이기심에 빠져 자신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면 그것으로 업신여기고, 놀리는 것이 더 많다오. 그런 그들 때문에 신분도 낮고, 재산도 많지 않은 우리들은 하루하루를 성실히 일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소. 모두들 가져가 버리니까요. 임금이 어릿광대를 제 맘대로 놀리며 자신의 쾌락만 챙기는 사이, 많은 백성은 이렇게 배를 굶주려 가며 한 많은 인생살이를 해오고 있던 것이라오.
아아.. 나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구려.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내뱉으니 속이 다 후련하오. 나는 이 글을 올림으로 인해 비판을 받더라도 무섭지 않소. 모두 사실이니 말이오. 그리고 이것이 우리 백성들이 하고 싶은 하소연이기 때문이오.
그럼 이만 글을 줄이려 하오. 어릿광대에 관한 재판사건은 우리 백성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큰 사건이니 아무쪼록 당신의 올바른 재판을 믿겠소. 죄는 법으로 다스리되, 어릿광대의 마음만은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전달 되었으면 좋겠소. 그리고 앞으로 우리 백성들이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오.
안녕히 계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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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개구리를 읽고 절름발이 개구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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