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기 - 천년의 사랑을 읽고 천년의 사랑을 읽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감상문 숙제로 인해서 선생님께 이렇게 편지를 올리게 되었네요..
조금 쑥스럽지만 제가 읽은 책 한 권을 선생님께 소개시켜 드리려 구요.
음.. 우선 책제목은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거예요.
“천년의 사랑”.
‘양귀자’님 소설인데요, 우선 양귀자님의 소개를 조금 해볼게요.. 양귀자님은 1978년「문학사상」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원미동 사람들』(1987),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1989), 『희망』(1990),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1993) 등 우리 일상을 비추는 따뜻한 등불 같은 소설들을 발표해 오셨어요. 1988년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특히 제가 지금 쓰려고 한 , 1995년 전생에 이루지 못한 영혼과의 사…(생략)

기여하는 소설이 될 것이다.
설화적 진리가 근엄한 이성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제 힘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이 소설이 동아시아 소설의 길을 모색 했다구? 제가 보기엔 그냥 한편의 사랑얘기였던 이 소설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았어요.
우선 이 소설의 대강의 얘기는 이렇습니다.
인희는 생후 2개월만에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고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스스로를 `꿈에서 추방당한 자`라고 표현하듯, 꿈꿀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고, 남들은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갖춰진 생존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살아온 생의 전부를 쏟아 붓다시피 해야 했어요. 직업은 백화점 광고부 근무. 전문대 졸. 유일한 친구인 음.. 친구 이름은 생각이.. A라고 해둘게요. A 역시 같은 고아출신이고, 다행히 그녀는 그를 아껴주는 남자를 만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요.
성하상은 유복한 가정 출신 이예요. 다만, 어머니를 일찍 잃었어요. 연극에의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한 어머니를 아버지와 집안이 받아들이질 못했고, 그 때문에 헤어져야 했고, 결국 임종까지 지켜보지 못했던 일이 상처로 남아있어요. 어쨌든 법대 진학 후 고시를 준비하다가,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홀연히 산중에서 도를 닦는 도인으로 변모합니다. 소설에 따르면, 앞일을 예측하고, `수력`이라 부르는 약간의 초능력도 발휘합니다.
진우. 이름만큼이나 멋있고 잘생기고 집안도 괜찮은 남자인데요, 인희가 믿는 직장 상사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잘될 것 같다가 일이 꼬이고 해서 이 소설에서는 그게 필연이었다고 인연이 아니었다고 나타내어지고 있어요. 나중에는 배반을 해 책임감 없는 남자로까지 전락해요.
소설의 주인공은 물론 인희와 성하상 이예요. 인희와 성하상은 천년전의 못다 이룬 사랑이라는 업보가 주어져 있다고 표현되고 있죠. 성하상은 `도` 수련을 통해 그걸 알게 되고, 인희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무지 원시적인 방법으로 구석기 시대의 문체로 편지를 써서 애절하게 사랑을 구걸해요. A는 황당해 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아요 .
이때 진우가 등장, 그럭저럭 괜찮은 신랑감이고, 사랑에 메말라 있는 인희에게 사랑을 주며 무지하게 잘해줘요. 인희는 평생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그런 사랑을 주는 진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요. 그래서 결혼까지 하기로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진우 집안의 반대. 특히 진우의 어머니가 악역의 주연으로 등장해서 인희를 괴롭히죠.
인희와 진우 , 동거로 돌입, 얼마 후 임신이 확인되지만 역시 예정된 수순이었던 진우가 어머니의 설득과 심한 집안의 반대로 인하여 변심을 하고 말죠.
인희는 자기 같은 아이를 만들지 않기를 다짐하고 애를 혼자 낳아서 키우기로 결심해요.
진우는 해외파견 핑계로 서둘러 도망치듯 내빼고, 그런 많은 일이 있는 동안에도 성하상은 변함 없는 사랑을 인희에게 보내죠.
인희의 육신이 아플 때에는 육체이탈로 인희의 집까지 찾아와 그녀의 몸을 보살펴주고 그녀의 마음이 아플 때에는 언제나처럼 편지로 그녀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었죠.
인희는 언젠가부터 성하상의 얘기가 믿겨지게 되고 천년 전에 성하상과 사랑을 나누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성하상의 요청을 받아들여 성하상의 근거지로 퇴거하고, 거기서 성하상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다가, 아기를 낳고는 안타깝게 병에 걸려 죽어요. 천년을 기다려온 사랑을 또 다시 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거죠.
성하상은 남은 애를 키우며 다음 천년후의 다른 모습의 사랑을 기다리며 살아가죠... 그런데 그 아이의 이름은...
“인희”입니다.
제가 ‘장경렬’ 교수님의 대단한 평론을 읽고 책을 한번 더 읽은 결과 이 이야기는 그냥 흔한 상투적 사랑 얘기 같지만 ‘천년’이란 신비스런 세기말적(이 소설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멸망하니 않 하느니 하는 세기말적 과도기였다.) 소재가 부합되어 윤회사상이니 어쩌니 하는 동양 정신과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들어맞는 소설 같아요.
「천년의 사랑」을 시작으로, TV,영화는 물론 가요에서까지 천년의 사랑 신드롬이 일어난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 정서에는 잘 맞아떨어지는 소재 같아요. 은행나무침대...손성훈의 천년의사랑... 서지원의 I MISS YOU 등등.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특히 영화 ‘은행나무 침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네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천년이라는 시공간을 두고 펼쳐지는 환상적이고도 애절한 러브환타지 영화예요.
천년 전 비운의 사랑을 나누던 종문과 미단은 황장군에 의한 처절한 죽음 뒤에 은행나무 두 그루로 다시 환생해요.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다시 증오의 화신 황장군의 저주로 갈라서게 되고, 안타깝게 쓰러진 미단은 은행나무침대가 되어 수현으로 환생한 한석규 앞에 나타나서 다시 사랑을 나누지만 또 헤어지게 된다는 내용이죠.
천년의 사랑과 내용 면이나 소재 면이나 같은 맥락의 영화인 것 같아요.
천년의 사랑이라.. 사랑이라..
`사랑의 원형`에 대해 생각해보았어요. 무엇이 사랑이고, 사랑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제까지의 나를 보면 겉으론 “천년의 사랑이 다 뭐야?” 하고 완벽한 현실주의를 주장하지만, 내면에선 낭만적 사랑을 자꾸만 맴돌게 되는 것, 그래서 ‘천년의 사랑’이란 책을 들게 되었던, 여러 사람에게 책 소개까지 하게 된 건지도 몰라요. 저 역시 그런 사랑을 꿈꾸어 왔을지도 모르구요. 그 때문에, 상투적인 얘기 속에 묻어있는 `천년의 사랑`이라는 책제목만 보아도 쿵쿵 가슴을 울려오는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성하상이 인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신비주의로 밖에 설명될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 이예요. 도무지 가능하지 않아요. 우주의 힘이라고 하는 신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그 실현을 위해서 천년이란 세월이 필요했을 정도예요. 그 신비한 우주의 힘도 천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 그 이유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양귀자 님의 소설에서 줄곧 만날 수 있는 그??따뜻한 사랑??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천년의 사랑』의 첫머리에 나오는 작가 님의 말이 그 해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영안실이 보이는 병실에서 구상되었고 첫 문장이 쓰여졌다. 영안실 앞의 그 많은 사람들과 또 영안실 안의 숱한 죽음들을 바라보던 내 머리 속으로 저절로 한 소설의 줄거리가 떠올랐다. …… 그때 이미 나는 좀더 다른 곳에서 소설을 바라보기 시작했으므로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었다. …… 그리고 거의 5년이란 시간을 보내고서야 하는 이 소설을 다시 고쳐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양귀자 님은??바라보았다‘ 고 고백하고 있어요. 병원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그 일들을 그냥 흘려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이 소설의 뼈대를 찾으신 거죠.
작품을 다시 고쳐 쓰기까지 5년이란 시간을 보낸 것도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바라보았다??는 표현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쓰여진 것처럼 보입니다.
전 이 책을 세 번이나 읽은 게 되네요. 세 번 읽었어도 결코 지루하다거나 내용을 미리 짐작하는 일은 없었어요.
읽은 책이었어도 읽을 때마다 앞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고 그 깊은 사랑얘기에 빠져들었으니까요.
누구나 한번은 꿈꿔오던 사랑얘기. 물론 선생님께서도 이런 사랑 한번쯤 꿈꿔 보셨겠죠?
우리들 마음 속에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에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의 책 소개가 어떠셨나요?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읽으셨다면 정리하는 기회가, 이 책을 안 읽으셨다면 이 책에 흥미를 가지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네요...^^;


2000년 0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