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고결한 삶의 본보기였던 한문학의 대가 고결한 삶의 본보기였던 한문학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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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11-26

고결한 삶의 본보기였던 한문학의 대가 고결한 삶의 본보기였던 한문학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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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삶의 본보기였던 한문학의 대가

우리 나라의 옛 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내용이 훌륭한 책을 남긴 분……, 그가 바로 최치원이다.
그는 태어날 때에도 신비했고, 살아 있을 때에도 쌍녀분 이야기에서처럼 신비한 데가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최치원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신비한 데가 매우 많은 분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수많은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야말로, 문학자 또는 유학자로서는 대단히 기이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첫째로, 그는 12세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그 낯선 곳에서 17세 때 과거에 급제했을 만큼 대단한 수재였다. 물론 그 시절의 과거 시험이 어떤 것인지 모르니 수재라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그의 뛰어난 글솜씨로 크게 이름을 떨쳐, 조국에 명예를 안겨 주었다.
둘째로, 그는 28세 때 귀국하긴 했으나, 이미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져 있던 신라에서는 어리석은 임금이나 간신배들이 그를 제대로 기용해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자신도 벼슬을 해서 나라를 보살필 생각이 없어져 버리매, 끝내 깊은 산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셋째로, 그는 《께원필경》이라는 저서 속에 훌륭한 글을 많이 남겼고, 그 밖에 옛 신라 땅의 곳곳에 세어진 비석에 신묘한 필적을 남겼다.
이로 해서, 그는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문학자이며 유학자로서 찬양받고 있다.
그는 또한 어지러운 세상을 선비답게 살아가는 하나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벼슬이나 명예 같은 것을 몽땅 버리고 깊은 산 속으로 사라진 것……,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태도였다.
당시의 신라와 같이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간사한 무리가 정권을 잡아 백성을 학대하는 그러한 시대에는 벼슬하는 것이야말로 죄악이었던 것이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입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힘없는 백성을 괴롭히는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다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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