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광개토왕을 읽고 광개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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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01-22

광개토왕을 읽고 광개토왕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위대한 왕의 이야기

광개토왕은 4세기경에 동아시아에 거대한 왕국을 이룩한 영웅이면서, 그에 대한 전기 자료가 매우 부족한 인물입니다. 광개토왕에 관한 글은, 고려 중엽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 사기’에 기년체로 쓴 약간의 자료가 보일 뿐, 그 밖의 책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19세기 후반에 광개토왕 비가 발견됨으로써 세상에 아주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청나라의 금석 연구가 관산월이란 분이 비를 발견하고 탁본을 떠서 발표한 것이 그 시초인데, 그 이전에는 우리 나라 역사학자들조차 압록강 너너편 중국 땅에있는 그 비석이 누구의 것인지를 몰랐다고 합니다.
고구려 제 20대 장수왕이 부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이 비석은 높이 6미터가 넘는 거대한 석비로 거기에 새겨진 1800여 자의 글씨는 오늘날 한국과 일본, 중국의 고대사를 고쳐 써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으로서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광개토왕은 이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무력으로 이룩했으나, 그는 결코 무기의 힘만을 앞세운 정복자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정복하면 그 땅에 문화의 씨앗을 뿌려서 가꿀 줄도 아는 영명한 지도자였고, 너그러운 다스림으로 백성들을 사랑했습니다.
그가 아리수 대첩으로 백제를 굴복시키고도 형제의 나라임을 내세워 그 땅을 차지하지 않은 일이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후 불교의 사찰을 세워서 싸움에 지친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한 것 등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가끔 강한 군사력을 가진 광개토왕이 왜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광개토왕은 피가 다른 이민족의 침략에는 강하게 맞섰으나 조상이 같은 동족의 나라에겐 너그러웠다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대왕의 무덤과 비는 당시의 국내성 동쪽 언덕, 지금의 요령성 지안현 동강 비석 거리에 세워졌는데, 그것은 대왕이 세상을 떠난 2년 후인 장수왕 2년(414년)의 일이었습니다.
‘삼국…(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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