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김대건을 읽고나서 김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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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김대건을 읽고나서 김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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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위한 거룩한 희생


나는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거듭 놀라고 또 감탄했다.
지금은 교회와 성당이 많고, 많이 세운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믿음이 강하다고 흉보는 사람도 없고, 열심히 하느님을 믿는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러나 불과 150여 년 전에는 천주교를 믿으면 죽임을 당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아마 그 대는 임금님이 가장 높고 제사 지내는 일이 중요한 때라서, 하느님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교리가 반역하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또한 장례 방식이 다르고, 조상님들께 제사도 안 지내니 흉측하고 무례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시기에 김대건은 증조할아버지가 천주교를 위해 순교한, 아주 절실한 천주교 신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천주교를 접한 그는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마카오로 유학을 가기로 하였다.
7개월이 걸린 멀고 힘든 여행을 오직 신앙의 힘으로 이루어 낸 김대건은, 마카오에서 성경과 라틴어, 중국어 등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고국에 천주교를 널리 전파하리라는 신념으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고국에서의 전도는 매우 험난하기만 하였다. 조정 대신들의 박해로 외국 신부와 교도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나무꾼으로 변장하여 국경을 넘고, 소 떼에 몸을 숨겨 포졸의 눈을 피해야 했으니,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또 자기가 신학 공부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가 숨어서 떠돌아다니게 되었으니 얼마나 슬펐을까?
고국에서의 포교 활동은 1년도 안 되었지만, 그가 남긴 자취는 천주교뿐 아니라 온 겨레에 영향을 주었다. 그가 순교한 뒤로 천주교 신자가 더욱 늘어났으니 말이다.
오직 한 가지 신념을 위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은 김대건 신부가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념을 위해 모진 고통도 가볍게 여긴 태도가 훌륭하다.
‘백 번을 죽는다 해도 난 하느님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거룩한 희생을 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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