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김홍섭을 읽고 김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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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12-03

김홍섭을 읽고 김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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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섭을 읽고

나는 여태까지 김홍섭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 친구들도 부모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분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셨다.
“아주 오랜 전에 대법원 판사를 하셨던 분인데......”
하고 할아버지도 한참 기억을 더듬으셨다.
김홍섭은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전주의 일본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심부름 일을 하면서 혼자서 법률을 공부했다. 그 변호사의 도움으로 김홍섭은 1939년, 일본 니혼 대학에 유학할 수 있었다. 거기서 공부하던 중 1941년 조선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홍섭은 서울에서 김병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게 되었다.김병로는 광주 운동,6?10만세 사건, 광복단 사건을 비롯해 독립 운동 관계 변론만을 맡는 변호사였다.
해방이 되자 서울지검 검사가 되어 남로당의 조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담당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나라는 어지럽고 검사는 양심대로 활동할 수 없는 때였기 때문에 그는 검사를 그만 두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얼마 뒤 대법원장이 된 김병로의 부름을 받고 법원으로 들어가 판사가 된 김홍섭은 서울 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판사에 대법원 판사에 이르었다.
김홍섭은 1953년 천주교도가 되어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감방을 돌면서 죄수들과 벗이 되었다. 죄수들은 김홍섭을 가리켜 ‘죄인들의 아버지’, ‘법관의 옷 속에 성자의 옷을 입은 사람’. ‘사도 법관` 등으로 불렀다.
김홍섭은 자신이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법관이면서 언제나 사람은 왜 죄를 지어야 하는지
죄를 지어야 하는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사회가 벌을 주어서 옳은 것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죄’ 라는게 무엇인지, 꼭 그런 것을 정해 두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했다. 그는 그런 고민 끝에 법에 대한 나름의 사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오경웅, 일본의 다나카와 함께 ‘3대 가톨릭 법 사상가’로 알…(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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