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꺼지지 않는 흑인 인권 운동의 불꽃 꺼지지 않는 흑인 인권 운동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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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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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흑인 인권 운동의 불꽃

남아프리카 흑인 인권 운동에 평생을 바치고 이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 그는 무려 27년 간을 감옥에 갇혀 살았다.
그러나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의 인권을 찾겠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트랜스케이의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44년에 아프리카 민족 회의에 가담하고 평생을 동지 올리버탐보와 함께 청년 동맹을 만들었다.
간디의 영향을 짙게 받은 만델라는 비폭력적인 투쟁 방식을 고수했다.
한편 1948년 백인 정부는 그 동안 관습으로만 지켜져 오던 아파르트헤이트 공식화?제도화하는 갖가지 법률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아프리카민족 회의와의 일대 격돌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만델라는 청년 동맹 의장으로 선출된 다음 해인 1952년 ‘악법 무시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이 운동으로 8천 5백여 명이 체포됐으며, 14명은 목숨을 잃었다.
흑인 저항 운동은 샤프빌 학살 사건을 계기로 비폭력?불복종 투쟁이 무장 폭력 투쟁으로 발전했고 흑인들의 정치 의식이 크게 고양되었다.
만델라가 본격적인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이 때이다. 아프리카 민족 회의가 불법화되자 탐보는 국외로 탈출하고, 만델라는 1961년 지하 무장 조직인 ‘민족의 창’을 결성해 적극적인 파업과 게릴라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1962년에 체포되어 국가 전복 기도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만델라는 로벤 섬에 있는 교도소에서 채석장의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백인 정권의 회유를 뿌리친 것이다.
흑인들의 끝없는 투쟁과 유엔 등 국제 여론의 질책에 견디지 못한 백인정부는 결국 1990년 2월 11일 조건 없이 만델라를 석방했다. 그 후 만델라는 1994년 4월 말에 실시된 최초의 자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마침내 342년 만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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