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나라를 위한 충정 그 누가 알 것인가 나라를 위한 충정 그 누가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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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7-31

나라를 위한 충정 그 누가 알 것인가 나라를 위한 충정 그 누가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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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충정 그 누가 알 것인가

19세기 말엽의 우리 나라의 정치 정세는 대단히 어지럽고 불안하였다. 왕조는 부패할 대로 부패하였고, 탐관 오리들의 행패는 극도에 달하였으며, 농민들에 대한 세금은 과중하였다.
또한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은 우리 나라를 침범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현실 하에서 농민들은 외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부패한 정부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최제우가 창건한 동학은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급속도로 성장하여, 단순한 종교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인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녹두 장군 전봉준도 동학의 접주였다.
전봉준은 1854년 전라도 고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체구가 작아 주위에서 그를 가리켜 ‘녹두’라고 불렀다. 그러나 키는 작았으나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재주가 비상하였으며, 학식도 높았고 무예도 뛰어났다.
그리고 항상 우리 나라의 앞날에 대하여 걱정하고, 어떻게 하면 올바른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전봉준은 서른여섯 살 되던 해, 황도일의 소개로 동학 교도가 되고 고부 접주가 되었다.
당시 고부 군수였던 조병갑은 탐관 오리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온갖 핑계를 다 내세워 세금을 거뒀고, 근거도 없는 죄명을 씌워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전봉준의 아버지인 전창혁도 이런 군수의 학정에 대항하다 처형되었다.
조병갑이 만석보의 수세를 부당히 징수하려 하자, 전봉준을 선두로 한 농민들은 이의 시정을 강력히 요구하였으나 체포, 또는 묵살 당하였다.
이게 분격한 전봉준은 1000여 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1894년 1월 10일 역사적인 동학 농민 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전봉준은 농민들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쌀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석보의 저수지를 파괴하였다.
놀란 전라 감사가 파견한 안핵사 이용태가 포악하게 농민들을 탄압하자 전봉준은 3월 하군 백산에서 농민군을 다시 정비하여 무장, 영광으로 진격하고 ‘창의문’을 발표하였다. 이 ‘창의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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