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모든 어머니의 본보기 신사임당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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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9-04

모든 어머니의 본보기 신사임당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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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머니의 본보기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조선 중기의 여자 문인으로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나고 호는 사임당이며 강릉에서 출생하였으며 성리학자인 이율곡의 어머니입니다.
사임당은 어려서부터 머리가 비상하고 총명하였기 때문에 여자가 배워야 할 바느질이나 수예는 물론 학문과 다른 예술 분야에서 눈부신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그는 부모에 대한 효성과 남편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어짐이 비할 데가 없어 오늘날도 ‘한국 여성의 귀감’ 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사임당은 사서와 삼경에 능통하여 어려서 이미 어른의 경지를 능가할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림 솜씨도 뛰어나서 일곱 살 때 안견의 그림을 놓고 본을 뜨며 훌륭한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사임당의 그림 실력은 나날이 늘어나 12살 때에는 안견의 그림을 본뜨지 않고 자신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붓글씨와 포도. 풀벌레의 그림에 능하여 그녀가 남겨 놓은 작품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사임당은 겸손하면서도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아 조금도 우쭐거리지 않았습니다.
사임당은 마음씨 또한 따뜻하고 고와 부모님에게나 형제들에게도 예의바르고 언제나 따뜻이 대하였습니다.
사임당은 19세에 덕수 이씨 가문의 이원수에게 시집가 4남 3녀를 두었습니다.
그 중의 셋째 아들이 이율곡입니다.
사임당은 시가의 고향인 율곡리에서도 살았고 친정에서도 가서 살았습니다.
38세 때 서울에 정착해 살면서 천리 길 강릉을 오가며 시집과 친정을 돌보았습니다.
강릉을 떠나 올 때 대관령에서 친정 집을 바라보며 지은 시 ‘대관령은 넘으며 친정을 바라본다’와 ‘어머님 그리워’는 지금도 유명합니다.
드디어 남편인 이원수가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을 때 사임당은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고 충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 화가라고 평을 받던 사임당은 48세 때 아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율곡의 나이는 16세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신…(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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