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민족의 태양인, 윤봉길을 읽고 민족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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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민족의 태양인, 윤봉길을 읽고 민족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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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태양인, 윤봉길을 읽고..

상해 홍구 공원의 거사를 일으켰던 윤봉길을 1908년, 우리 나라가 일본의 혹독한 지배를 받고 있을 대 충청남도 에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시기가 좋지 않았던 때에 태어났던 그는 일본이 조선 땅에 들어와 우리 것을 빼앗아 가고, 우리 백성들을 억누르던 그 모습을 보며 하루빨리 우리 나라가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봉길의 생각은 삼일운동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18세가 되던 해에 조선 사람이 먼저 깨우쳐야만 일본을 몰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야학을 열고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 부흥 운동을 펼쳐 사람들에게 독립 정신을 심어주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그런데 이 운동이 일본에 알려져 탄압이 심해지자, 결국 그는 1930년 부모님과 아내와 이제 막 세 살이 된 아들 종을 두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가는 도중에 그는 기차 안에서 일본 형사에게 잡혀 경찰서에서 호된 고문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가 기껏해야 국문이나 깨우친 무식한 사람의 노릇을 하여 간신히 풀려나게 되었다. 봉길을 이 경찰서에서 나온 지 닷새째되는 날에 드디어 끝없이 넓은 만주 벌판에 섰다. 만주 벌판에서 청도에 와서 시량리에서 했던 것과 같이 노동 강습회를 열어 앎을 가르쳐 그가 있는 곳의 사람들은 절대로 술집으로 내달거나 날품팔이꾼들이 없도록 하였다. 이렇게 청도에서 열 달간을 머물며 민족 운동의 횃불을 들었던 봉길은 1931년 8월, 드디어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상해 땅을 밝았다. 하지만 봉길이 상해에 왔을 때에 중국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전쟁이 치러지고 왜놈들이 지키고 있던 터라 사람들이 겨우 버티며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을 통해서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김구 선생을 만난 봉길은 한인 애국단에 들어갔다. 그런데 1932년 새해가 덩두렷이 밝은 날 봉길의 눈은 못박은 듯이 굳었다. 한국인 이봉창이 일본 천황을 폭살 하려 했으나 불행하게도 일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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