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방정환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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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6-06

방정환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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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영원한 친구 방정환
우리들의 가슴에 사랑을 듬뿍 안겨 준 방정환 선생의 전기를 읽고 나니 새삼 어린이날이 고맙게 느껴진다.
일제 시대에 학대받고 짓눌렸던 우리 어린이들에게 빛과 희망을 심어 준 방정환 선생은 지금의 서울 당주동 부근인 야주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얼마 후 집안이 기울어져 그 후부터는 평생 곤궁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불평이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고 비굴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을 때엔 웃음이 나왔다.
그는 구수한 얘기로 친구들을 웃기고 울리는 재주꾼 소년이었을 뿐만 아니라, 불과 열 세 살 때 ‘소년 입지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왜?’라는 궁금증을 풀어 나가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주변의 사소한 일로부터 우리나라의 상황 문제까지 토론하였는데, 그러는 동안 소년 회원들의 가슴속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었다.
큰 포부를 지닌 소년 문학가, 그러나 가난은 선생님의 꿈을 산산이 부숴 놓았다. 어려운 집안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방향이 전혀 다른 상업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가정 형편으로 2년 만에 그만두어야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조선 총독부의 토지 조사국에 취직하였다.
이 무렵,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의암 손병희 선생님의 셋째 딸과 결혼도 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방정환 선생의 뜻은 더욱 확고해졌다.
뜻이 맞는 동지들과 ‘색동회’라는 모임을 조직하여 어린이 운동에 앞장서는가 하면, 애국 소년들을 모아 청년 구락부를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어린이’란 말을 만들어 썼다. 그리고 『어린이』잡지를 만들어 어린이 존중 사상을 널리 퍼뜨렸다.
1922년에는 세계의 유명한 동화를 모은 『사랑의 선물』을 번역하여 내놓기도 하였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날’을 정하신 분도 바로 방정환 선생이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어린이들을 모아 재미있…(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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