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백범일기 나의 소원은 남북통일 백범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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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1-27

백범일기 나의 소원은 남북통일 백범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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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



김구는 독립 운동가?정치가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때 과거를 보러 갔다가 부정한 짓을 보고 그 뒤부터 병법과 다른 책을 읽었습니다.
동학의 접주가 된 김구는 동학군을 이끌다가 실패하여 1895년부터 독립 운동에 뜻을 두었습니다.
1896년 2월 일본 육군 중위를 살해한 뒤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었고, 복역 중 탈옥하여 방랑 생활을 하였습니다.
또한, 1910년에는 신민회 간부로 활약하다가 이듬해에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감형되어 1914년에 풀려 나왔습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뒤 김구는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 정부의 국무령(뒤에 주석)이 되었습니다.
김구는 항일 투쟁을 무력으로 감행할 것을 결심하고 1931년에는 이봉창의 일본 천황 암살을 뒤에서 지휘하고 이듬해에는 윤봉길 의사로 하여금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일본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대한 독립군도 조직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했으나 8?15 광복으로 중단되어 귀국했습니다.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 평생 소원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은 남북한 동시 총선거를 통한 완전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 북한을 방문했으나 실패했습니다. 1949년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져 한많은 생을 마쳤습니다.
김구의 애국 정신과 의기는 일본 중위를 맨주먹으로 때려 눕히고 태연히 해주 텃골의 김창수가 죽였노라는 방을 붙인 뒤, 고향으로 와 있다가 일본 경찰에 붙들려 간 한 가지 사실 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 특별 대우를 받고 또 고종 황제의 특사를 받아 사형 직전에 사면된 김구의 일생은 공생과 가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상하이 임시 정부를 찾아가서 문지기로 써 달라고 한 김구, 그 분은 재물은 물론 명예나 지위 따위에도 티끌만큼의 욕심이 없었습니다. 그토록 훌륭한 인품을 지녔기 때문에 선생 앞에 청…(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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