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백범일지 백범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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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9-11

백범일지 백범일지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참된 인간의 길을 밝힌 지도자-
나는 이번에 백 범 김 구 선생의 전기를 읽고, 그의 애국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안창호가 그에게 임시 정부에서 어떤 자리를 맡고 싶은가 물었을 때 문지기를 하겠다고 대답했던 그의 뜻이 거룩하다고 느꼈다.
김 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 구는 어릴 때 덩치도 보통 아이보다 크고 젖도 게걸스럽게 먹었는데 가난하여 먹지 못한 엄마의 젖이 모자라 동냥젖을 먹이려 다녔고, 세 살때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는 마마자국이 남게 되었다.
김 구의 어릴 때 이름은 창암 인데 창암이 어릴 때 아주 말썽꾸러기였다. 엿 장수가 지나가자 엿이 먹고싶어 아버지의 성한 숟갈을 발로 밟아 분질러서 엿을 먹기도 하였고 아버지가 아랫목 이불 속에 엽전 스무 냥을 넣어두는 것을 보고 그것을 몰래 꺼내 떡을 사먹으러 가다가 걸리기도 하였고, 또 장마가 져서 비가 마니 올 때 물감을 냇가에 타서 호되게 맞은 일도 있었다. 창암은 마음을 고쳐먹고 양반이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과거 제도가 부패했음을 알고 그만 포기를 하였다. 나는 개인의 능력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그 시대 풍조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김 구가 이 시대에 살았다면 정말로 세계의 거물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유명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신분 차별이 심했을 뿐 아니라, 관리들이 부패하여 일반 백성들의 생활이 무척 어려웠다. 김 구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생각한다는 동학에 대하여 듣고 귀에 솔깃하여 동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공부를 해서 상놈의 지체에서 벗어나려던 그는 1893년 열 여덟이 되는 해에 마침내 동학교도가 되어 평등주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를 하는 한편 전도에도 힘을 기울여서 그가 전도해 얻은 신도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아기 접주’ 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때에는 전라도 고부에서 접주 전봉준이 군사를 일으킨 시기였는데 어린 김 구도 팔봉산 밑 푸른 갑사에 ‘팔봉도소’…(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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