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별빛처럼 맑았던 독립의 염원 별빛처럼 맑았던 독립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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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8-28

별빛처럼 맑았던 독립의 염원 별빛처럼 맑았던 독립의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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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처럼 맑았던 독립의 염원

조선시대 끝 무렵, 즉 한말은 몹시 부패한 세상이었다. 관리들은 썩을 대로 썩어서 백성들을 못살게 들볶고 재산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러시아와 청나라와 일본은 우리 나라에서 세력 다툼을 벌여, 우리 나라는 하루하루 힘이 약해 갔다.
그 때, 관리들에게 재산을 빼앗긴 농민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만주 땅으로 이사를 갔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노략질하는 일본 사람들과 싸우다 만주로 몸을 피해 갔다.
이들은 만주의 황무지를 일구어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학교를 세워 자손들에게 독립정신을 불어넣어 주었고, 더러는 독립군의 한 사람이 되어 일본군과 싸우기도 하고, 또는 독립군에게 양식이나 돈 따위를 대어 주기도 하였다.
윤동주의 할아버지인 윤하현도 외삼촌인 김약연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특히 외삼촌인 김약연은 독립운동가로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만주로 쫓겨간 동포들이 자리를 잡고 살도록 해 주기 위하여, 김약연은 동가라는 중국 사람들로부터 수백 정보의 임야와 황무지를 사들였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마을을 만들고…….
이렇게 해서 생긴 마을이 윤동주가 나서 자란 명동촌이라는 동네이다.
이 마을은 만주의 여러 한국인 부락 중에서도 독립 정신이 강했던 마을이었다. 명동 학교에서 김약연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여러 고장으로 헤어져서 조국의 독립을 생각하며 꾸준히 싸워 나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윤동주가 독립 사상의 굳은 신념을 품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윤동주는 고종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독립 운동을 했다. 그리고 일본 형사들에게 잡혀가서, 감옥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1945년 2월 16일에 윤동주가 옥중에서 사망했고 20일쯤 후에 송몽규도 옥사하고 말았다. 해방되기 여섯 달 전인데, 그 때 그들은 동갑으로 28세였다.
우리가 윤동주를 지금도 우러러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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