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신채호를 읽고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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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1-06

신채호를 읽고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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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를 읽고

1880년 12월 8일. 신채호는 신숙주의 18대 손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신채호는 어려서 부터 마을 사람들로 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학문에 밝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나라의 운명이 급박함을 깨닫고는 고향에 내려가 문동학원의 강사로 있으면서 한글을 가르쳤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졌다. 마을사람, 조선사람 모두 머리카락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효`라고 여겼다. 하지만 신채호는 제일 먼저 앞장서서 머리를 잘랐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의 깊은 생각 때문에 가능 했던것 같다. 그것은 바로 거추장스런 상투를 과감히 잘라버리듯 이 새로운 시대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었던것 같다. 하지만 신채호는 아무리 수천년 내려오던 굳은 습관이라도 그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결단력과 강직함, 곧은 성격을 엿 볼 수 있었다.
1905년 신채호는 황성 신문의 사장 장지연의 제의를 받아 드렸다. 그것은 신문을 통해 계몽운동이 힘을 얻게 된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는 강력한 필치와 시원한 비판으로 독자들을 사로 잡았고 그의 논설은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로왔다. 하지만 사장인 정지연이 감옥에 들어가는 탓에 양기탁의 간곡한 제의에 마음이 움직혀 대한 매일 신보에서 일제의 침략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논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1905년 을사조약의 충격으로 인하여 역사연구에 매달렸다. 신채호는 나라를 살리려면 온 국민이 뜨거운 애국심으로 뭉쳐 일제와 죽기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발로 뛰면서 역사연구에 몰두하며 잘못된 점을 바르게 고쳐 썼다.
드디어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하지만 신채호는 이것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디까지나 점잖은 선언이고, 신사적인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신채호는 오직 일제와 싸워 이겨 독립을 쟁취하자는 폭력혁명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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