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우장춘박사 우장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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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10-08

우장춘박사 우장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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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피를 받은 우장춘 꽃씨 할아버지께서는 일본 아이들이 센치 노꼬라고 놀렷는데 어머니께서는 조선 사람을 보고 조선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게머 이상하니? 앞으로는 또 그렇게 놀릭든 "그래 난 조선사람이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아버지르 자랑스럽게 생각 해야 된다고 어릴때 부터 가르침을 받아 아이들이 놀려도 절대 울지 않겟다고 다짐 하고 일본인으로 편안 하게 살수 있는 방법보다는 어머니 말씀대로 항상 아버지의 조국을 머리속에 담아두고는 농림성의 농사 시험장에서 일본 아이에게 지지않고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
지진이 일어나자 조센징이 불을 질렀다 하면서 토오꼬오에 있던 조선아이 6천 여명이 죽음을 당했고 결혼할 여자가 있었지 만 조선인 이여서 여자 부모도 모시지 못하고 결혼 하는 등 조선인의 차별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우장춘 할아버지께서는 나팔꽃 연구를 시작으로 나팔꽃은 어두운 곳에서 피지 않고 아침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우고 나팔꽃의 수명은 단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햇살을 받기위해 오랜시간 씨앗속에 숨어 있다가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는다.
시계 방향으로 감겨간다는 덩굴 같이 박사님의 인생 같다는 생각에 아픔과 함께 생명의 신비가 느껴진다.
힘들계 자신을 선택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잊지 않았고 코하루마 부인은 우장춘 박사계서 나팔꽃에 의유전에 관한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수 있게 헌신적으로 생각을 한다.
그 결과 겹꽃 피투니아를 세계최초로 만들어 냈고 우장춘 할아버지는 하찮은 말을 시시하게 여기지 않고 시시하지만 실천 하기는 힘들다고 가르치느 젊은 후배들이 믿고 기댈수 있는 선배 였다고 한다. 조선이 해방되고 김중의 간청으로 아버지의 나라로 힘들게 혼자서 귀국해서는 한국 농업과학연구소 소장으로취임한다. 우리나라의 육종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전라남도 진도의 연구소는 종자 생산지로 자리 잡아 수원 중앙 기술원 김해의 과일 육묘장등 연구소가 국립이 되자 제주도 지질 조사를 한뒤 귤에 대한 기록을 조사해서 신품종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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