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원효를 읽고나서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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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원효를 읽고나서 원효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독후감>
불교계의 거성 원효

수능 날이 되자 TV에서 아들, 딸이 꼭 수능시험에 잘 보기를 기원해 절에서 기도를 드리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많이 나왔다.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부처님께 비는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계속 보고 있자니 원효대사가 생각이 났다.
신라 중기의 승려로 성은 ‘설’씨이고 ‘원효’는 법명이다.
원효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군에 의하여 몹시 시달림을 받고 있던 617년에 경상북도 경산 지방에서 태어났다.
원효는 뒷날 신라 3현의 한 사람인 설총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화랑으로 전쟁에 나가 수많은 전우를 잃고 사랑하던 부하들도 많이 죽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깊은 의문에 빠져들었다.
전쟁의 승리도 왕관도 명예도 사랑도 모두 죽음으로 끝나는데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이다.
원효는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불교의 진리를 깨치기 위하여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의 길을 떠났으나 처음엔 고구려 순찰대에 잡혀서 실패하였다.
고구려를 거쳐 요동지방에서 당나라로 넘어 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학 갈 길을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바다를 건너가려다 당황성에 도착하여 배를 기다리던 도중 폭풍우를 만나 어느 오래된 무덤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원효의 일행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잠을 자다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는 크게 깨우쳤다,
밤에는 물을 맛있게 먹었는데 아침에 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원효는 처음에는 구토를 하였으나 생각해보니 이내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당나라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서라벌로 돌아와 서라벌에 자기가 깨우친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면서 <법화경종요> 라는 책을 내어 장차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정신적 기둥을 세웠다.
그의 불교 사살은 승려가 산 속에만 파묻혀 참선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고 일반 사회속에 파고들어 어리석은 백성을 깨우쳐 주고 이끌어 가는 것이 불교의 참뜻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흐름…(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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