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윤봉길의사 를 읽고 나서 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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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10-13

윤봉길의사 를 읽고 나서 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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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출판사 : 학원출판공사
책이름 : 윤 봉 길
우리 가족은 이번 겨울 방학숙제를 할 겸 천안에 있는 독립 기념관을 견학했다. 거기서 윤봉길 의사의 동상과 사진 등을 보았다. 그런 다음 우리 가족은 충청 남도 예상군 덕산면에 있는 윤의사 기념관과 사적지를 돌아 보았다. 나는 사적지에서 윤의사가 태어난 집, 자라난 집, 야학을 운영했던 집을 보고 윤봉길 모습을 되새겨 봤다.
윤봉길은 1908년, 충청 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는 별로 부유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열심히 벌어서 재산을 모아 네 살 때는 꽤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1918년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3?1 운동이 일어난 뒤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반대해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보통학교를 그만둔 윤봉길은 서당에 가서 한학을 공부했다. 그런 다음 여러 선생님을 모시고 전통적인 유학을 공부했다.
1926년, 공부를 마치고 농촌 계몽 운동에 뛰어들었다. 농민들을 잘살게 하려는 운동을 활발히 벌이던 윤봉길은 1929년 부흥원을 세웠다.
윤봉길은 독서회를 조직해 동아 일보?조선 일보등 민족신문을 비롯한 잡지와 책들을 널리 읽혔다. 뿐만 아니라 농가의의 생산량을 높여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물산 부흥 운동도 벌였다. 윤봉길은 농촌 청소년들에게 체육을 보급할 목적으로 ‘수암 체육회’를 조직하여 농민들의 단결심을 키우도록 했다. 그러나 번번이 일제 경찰의 감시와 간섭 때문에 목적한 만큼 제대로 성취할수 없었다.
마침내 윤봉길은 본격적으로 독립 운동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193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가 망명 길에 나서면서 부모와 형제, 이웃에게 남긴 말은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 는 내용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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