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윤선도를 읽고 나서 윤선도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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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9-16

윤선도를 읽고 나서 윤선도를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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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를 읽고 나서
-정의로운 윤선도-

윤선도라는 책을 처음 읽어 보았다,
윤선도는 시조작가는 솜씨가 뛰어나고 아름답고 불행한 시대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조선시대 1587년 6월 22일 한성의 동부마을에서 윤유심의 둘째 아들 태어났다.
큰 아버지 양자로 들어 갔다. 고조 할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모았기 때문에 생활도 매우 넉넉하였고 이름있는 자랐고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윤선도는 몸이 매우 허약하였기 때문에 동무들과 전쟁놀이를 할때면 윤선도 속한 편이 지곤하였다. 윤선도가 어린 나이때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7년동안이나 삼천리 강토가 말발굽에 짓밟혔다. 전쟁동안 가족과 함께 몇 번이나 피난을 다녀야 하고 임금님의 피난 길을 보고 다짐했다.
‘내가 장차 벼슬길에 나가면 이처럼 비참한 전쟁이 다시는 없도록 나라 일을 바르게 해 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광해군때 간신들이 날 뛰고 당파 싸움이 심해지자 정의로운 윤선도가 상소문을 몰렸다가 아버지는 파직당하고 윤선도는 함경도 경원으로 귀양갔다. 귀양살이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의 시조 <건희요와 오후요>는 임금임에 대한 그리움과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가득들어 있었다. 그는 인조반점이 끝난후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윤선도의 답안지를 보고 감탄한 관리들은 두 왕자님의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임기가 끝난 후에 5년이나 더 왕자의 스승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
그 후에도 정의감이 강하여 다른 신하들의 잘못을 보면 정의를 밝히려 하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어 또 벼슬을 그만 두게 되었다.
병자호란때 피난하는 임금님을 찾아 뵙지 않았다는 불충으로 다시 경상북도 영덕 두 번째 귀양에 올랐다. 이 때 <산중신곡>과 <산중속신> 이라는 대표적 시조를 지었다. 이어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자연의 모습에 홀연히 하나가 되어 시조의 절정이<오우라>를 짓게 되었다. 물, 돌, 소나무, 대나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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