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율곡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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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율곡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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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선생"을 읽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이 날을 위해 수많은 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 목숨을 버리셨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장하신 분들의 피땀 나는 노력과 희생으로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겨레가 한층 더 나라를 빛내는 길은 오직 하나, 위인들의 공적을 살피고 본받는 것이며, 이로써 그분들의 정신과 뜻을 길이길이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이 생각된다. 기울어져 가는 국가와 슬기를 잃어 가는 민족을 위해 몸을 바치신 이 많은 분들 중 특히 청렴결백한 마음으로 일생을 살아가신 `율곡 선생`을 아니 들추어 낼 수 없다.

임금 앞에서도 어떤 부당한 일이 있을 때를 막론하고 오직 정의의 길을 찾아 일을 해결하셨다. 때로는 이런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임금 이하 여러 대신들에게 까닭 없는 미움과 시기를 받기도 했다. 설혹 목숨이 다할지언정, 거짓 없는 마음은 버리지 못하겠다고 신조를 삼으신 그이! 정녕 우리가 받들고 모셔야 할 분이 아닐까? 사실, 이분의 공적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율곡 선생이 나중에 성인이 될 만한 어릴 적의 기록도 있다. 사임당 신씨가 태몽을 꾼 것! 하늘의 용이 내려와 품안으로 들어가던 그 꿈부터가 율곡 선생을 범상치 아니하게 하였다. 정말이지 율곡 선생은 천재였다. 율곡 선생이 세 살 때 붉게 익어 터진 석류를 보고 한 "석류피리쇄홍주"라는 말! 이 기교하고도 아름다운 표현은 지금껏 명구로 전해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겨우 걷고 엄마품이나 찾을 그런 나이에 어머님 병환의 회복을 위해 사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린 것 또한 도저히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갸륵한 행동이다. 나는 그저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지내면서 큰 꿈을 가졌으니 천부당 만부당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율곡 선생은 후에 임금의 진정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벼슬을 마다하고 먼 농촌에 가서 유학자를 키우느라 애쓰심이 더…(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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