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이봉창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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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02-17

이봉창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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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을 읽고 나서
최향숙 글/ 문주희 그림
출판사 : 산하

20세기 전반기에 동남 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일제의 침략을 받았다. 여러 나라가 국가와 민족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에게 대항하였지만 한국 민족만큼 강인하고 격렬하게 일제와 싸운 민족은 드물다. 일왕을 처단하려는 것 역시 우리 한국 민족뿐이었다.
처음엔 박열 의사가 히로히토의 결혼식에 폭탄을 던지려다 던지기 직전에 발각되었고, 1925년에 김지섭 의사가 일본 궁정으로 들어가는 이종교에게 폭탄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1932년 1월 8일 세 번째로 던진 사람이 바로 한국의 의혈청년 이봉창이다. 이렇게 3번씩이나 던진 것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끈질기고 목숨이 질긴 잡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까지 강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이봉창 의사는 1900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철로 부근에 있던 땅을 일본인에게 빼앗긴 탓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다. 이봉창은 소년 시절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과점에서 일도 하고 용산 역에 기차운전 연습생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6년 간 노동생활을 하며 어려운 삶을 꾸려 나갔다.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이봉창은 일본인과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인이 되어갔다. 일본말도 잘하고 일본 사람의 습성도 잘 알고 있어 겉모습을 완전히 일본인이었다.
그리나 그의 속마음은 20살 때 경험한 3.1운동으로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우리나라의 독립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있었다. 1931년 1월 상해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인사들을 만나 일본의 일왕을 처단하여야 한다고 재촉하였다. 그리고 김구를 만나 "나는 이제 31살이다. 앞으로 이렇게 비굴하게 31년을 더 사는 것보다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사업에 몸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다"며 자신의 진심을 김구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김구는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의열 투쟁을 모색하고 있던 때였다. 이봉창 의사와 김구는 자주 만나면서 자신의 마…(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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