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이완용 평전 이완용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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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08-31

이완용 평전 이완용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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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이완용. ‘민족의 반역자’, ‘매국노’, ‘만고의 역적’.
국내에서 간행된 모두 인명사전과 역사교과서에서 이완용이라는 이름 석자 앞에 어김없이 붙어다니는 수식어이다. 이완용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가 한 권도 없었고, 아마도 이런 연구풍토는 학자들의 직무유기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이완용의 후손이 땅을 되찾는 소송을 제기해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과연 이완용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은이인 윤덕환 씨는 <이완용 평전>을 통하여 그 동안의 이완용에 대한 시각을 상당부분 거스르고 있다. 이 평전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제기하고 있어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조선말 정치가인 이완용은 1882년 과거 시험에 응시병과로 합격하여 검교, 수찬, 해방영 군사마 등 주로 군 관련 하급관리로 정치역정을 시작한 사람이다. 과거에 합격하기 한 해전인 1881년에 당시 유일무이한 서양식 교육기관이었던 육영공원으로 들어가 영어를 배우는 등 서양학문을 학습한 몇 안되는 관리였던 탓에 세강시강원 겸 사서를 지내면서 나중에 순종이 되는 세자의 측근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이완용은 벼슬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승승장구하고, 1887년에는 미국참사관이 되어 미국에 건너가 선진 사회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듬해 5월에 귀국한 후 이조잠의, 외무참의를 역임하였다. 1888년 12월 미국 대리 공사가 되어 다시 도미했다가 1890년 귀국하였다. 1895년에는 오늘날의 문굡장관에 해당하는 학부대신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 때에는 친러파로서 외부대신겸 농상공부대신의 역할을 했고 나중에 일본의 세력이 강해지자 친일파로 바뀌어 1905년에는 다시 학부대신이 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의 체결을 지지, 솔선하여 서명함으로써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지탄을 받았다. 이후 이완용은 을사조약을 성사시킨 공신으로서 12월에 의정대신 서리 겸 외부대신 서리, 1907년 의정부 참정이 되었으며 의정부를 내각으로 고친 다음 통감하고 이토히로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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