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이육사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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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9-07

이육사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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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이육사는 우리 민족이 고통 받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문학의 한 분야인 시로 독립투쟁을 하신 분이다. 그는 일본에 대해서 저항을 했고 일본 옥살이의 고문을 견디고 계속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이다. 그는 `청포도`나 `광야`같은 뛰어난 시를 지으신 분이기도 하다.
이육사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실감났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한자책인 소학, 천자문등을 모두 익히고 치언공과 허겸등의 말을 들으면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특히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강해서 많은 지식을 얻기를 원했다.
이육사네 가족은 대구로 이사를 했다. 이육사는 그동안 다니던 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 그것은 거리가 먼 것도 이유가 되지만 그는 솔직히 모두 다 배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었다.그래서 그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지피지기 100전 100승이다`라는 속담처럼 일본을 이기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교육열은 대단해서 자신이 공부를 한 다음 일본어로 된 책이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일본책을 빌려와 읽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 그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새신랑을 때리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그의 발바닥을 때렸다. 그러자 이육사는 너무 아팠지만 태연한 척 하며 말로 그의 기를 꺽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은 매우 아픈 척을 하거나 비굴하게 때리지 말라고 빌었을 텐데 이육사는 그 아픈 매를 참아 내었다. 이런 끈질김과 참을성이 나중에 감옥에서 일본군들이 고문을 해도 참아내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의열단에 가입했고 아내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이정기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오래된 친구처럼 친해졌고 우리 민족을 아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일본에서는 지진이 났는데 일본은 민심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 사람들을 핑계되어 아무런 죄도 없는 조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정말 어처구니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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