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장영실 장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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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03-02

장영실 장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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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장영실은 15세기에 활약한 과학자로서 그가 태어난 해나 사망한 해도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는 미천한 신분으로 세종 대왕의 발탁을 받아 놀라운 발명을 해냈습니다.
그가 발명한 것으로서 대소 간의, 흠경각 혼상, 앙부 일구, 일성 정시의, 자격루 등이 꼽히고 있지만, 그는 또 인쇄술과 구조술에도 공헌이 컸습니다. 그러나 발명, 고안은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한 자료로서도 알 수 있듯 그에게는 정초, 이천, 박연 같은 협력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게 그와 같은 기회를 주고 재능을 발휘하게 한 분은 바로 세종 대왕이었습니다. 물론 세종 대왕 이전에 천문 관측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라 선덕 여왕 때의 첨성대는 그만두더라도 고려 시대에도 천체 관측이 활발했습니다.
특히 충렬왕 이후, 원나라의 세력이 밀려 왔을 때 원나라 천문학자 곽수경의 영향은 매우 컸던 것입니다. 곽수경은 서역의 앞선 천문 기술을 도입하여 숱한 천문 관측기기를 발명했고, 장영실 등은 또한 그것을 소화시켜 독특한 발명을 이룩했던 것입니다. 아깝게도 모두 역사의 망각 속에서 사라져 버려 그 모습을 볼수 없는 게 유감이지만, 그것들은 당시 최고 수준의 과학적 천문 관측 기구였던 것입니다.
특히 측우기 같은 것은 당시의 어느 나라도 흉내내지 못한 독특하고도 참신한 발명이었으며,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 것을 모방했다 하더라도 그 발명이 갖는 의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것을 그대로 두들겨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것을 모델로 삼고 발명해 내는 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노력과 피땀을 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장영실을 비롯한 일련의 과학자들은 우리 역사에 남는 위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빛을 보지 못하고 헛되이 사라졌던 것입니다. 어째서일까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임진 왜란과 병자 호란과 같은 국난이 있어 세종 대왕 때의 과학 사업이 없어졌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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