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정몽주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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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4-03

정몽주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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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
고려의 마지막 기둥 정몽주!
그는 유학자이며 정치가이고, 외교에 능한 고려 말의 충신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쓰러져 가는 고려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은 고려의 기둥이었다.
정몽주는 1337년 경상도 영천군 동우항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스물네 살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기울어져 가는 고려 왕조의 부흥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364년에는 이성계의 종사관으로 여진족을 무찌르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그 뒤 서장관으로 홍사범과 명나라에 갔다가 임무를 완수하고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인임 일파의 배명 친원의 외교 방침을 반대하다가 귀양살이도 했다. 하지만 정몽주는 귀양지에서도 젊은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열의를 보였다.
그 무렵, 고려는 북쪽으로는 원나라와 명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렸으며, 남쪽으로는 왜구들의 잦은 행패로 쩔쩔매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나라 안팎의 사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은 사치와 방탕을 일삼았으며 그 주위에는 간신들이 들끓었다. 더구나 권세를 잡은 대신이나 귀족들은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나쁜 일을 서슴없이 했다.
정몽주는 이처럼 안으로 병들어 가는 나라를 매우 걱정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 임금에게 그른 것은 배척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하지만 임금은 간신들의 말만 듣고 그를 귀양까지 보내게 되었다.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정몽주는 일본으로 건너가 왜구들의 침략을 엄중하게 항의하고, 붙잡혀 간 고려인 수백 명을 귀국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편, 정몽주는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우도록 하여 후진 교육에서 힘썼다. 또한 그 당시 성행했던 불교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끼고 자신이 먼저 유교에 따른 예의 범절을 지키며 유학을 진흥시켰다.
또 외교면에서도 수차례 명나라를 왕래하며 그들과의 상호 통상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기기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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