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정약용전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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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5-02

정약용전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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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
??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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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실학자라고 불리는 ‘정약용’ 그는 아버지의 엄한 교육 속에 자라나 항상 백성들을 생각하며 책을 썼고 이론만 중심적인 학문보다는 직접 실생활에서 쓰이는 실학에 중점을 두고 제일로 생각하며 공부를 하여 조선 최고의 실학자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서양의 과학기술과 천주교를 같이 전파하는 서학을 접하고 서학이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서학을 믿은 죄로 귀양을 가고 귀양을 가서 자신의 생각을 책에 담은 뒤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1762년 6월 16일, 경기도 광주군 마현리에서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때는 세상이 당파 싸움으로 어지러웠던 시대, 과거에 급제하여 진주 목사까지 지낸 아버지 정재원은 벼슬을 내놓고 시골로 내려왔을 때였다. 그의 아버지 정재원은 다른 아들들과 다르게 총명한 약용을 공부시키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다고 한다.
정약용도 어렸을 때는 굉장한 개구쟁이였다는데, 나는 위인이 모두 어렸을 적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기만 하고 성품이 바르고 한 줄 알았더니 개구쟁이였던 위인도 있다니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악용이 9살이 되었을 무렵 약용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다. 슬픔에 잠겨있는 약용을 보살펴준 사람은 큰 형수였다. 큰 형수 덕분에 약용은 다시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오래 되지 않아 다시 개구쟁이 소년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10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에게 매와 함께 교훈을 얻고 약용은 고향 마재에서 새로운 다짐을 하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약용은 외가에서 책을 빌려오기까지 하며 열성을 보였다. 그래서 나온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있다. 어느 선비가 약용이 많은 책을 싣고 가는 것을 보고 그 책을 정말 약용이 읽은 것인지 물어보고 문제를 내자 모든 문제를 약용이 거침없이 답했다는 것이다. 더 웃긴 것은 그 학자가 우의정까지 지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놀랬을 정도면 약용이 어렸을 적부터 얼마나 많은 공부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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