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페스탈로치를 읽고 나서 페스탈로치

독후감 > 위인전기
인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페스탈로치를 읽고 나서 페스탈로치.hwp   [size : 28 Kbyte]
  59   0   500   2 Page
 
  _%
  등록일 : 2011-12-31

페스탈로치를 읽고 나서 페스탈로치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페스탈로치
새로운 교육방법을 계발한 근대교육의 선구자(1746 ~ 1827)

업적

"학교와 일터는 한 몸이다. 공부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공부하자."
이것이 페스탈로치의 교육 방법이다. 일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1746년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난한 집이었지만 훌륭한 어머니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9살 때 라틴어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카를리나 대학에서 보드머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역사와 정치학을 가르친 보드머 교수는 나라가 살 길은 젊은이들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귀족들이 백성들을 못살게 하고 지주가 소작인을 착취하는 데 분개했다.
16살 때 취리히 대학 전문부에 들어 갔다가 취리히 대학으로 옮긴 페스탈로치는 목사가 되고자 했다. 18살이 되었을 때 `애국자단`이라는 모임에 들어가 나라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배웠다.
1769년에 23살의 나이로 농촌에 들어간 페스탈로치는 7살이나 많은 안나 슐테스와 결혼을 하고, 1771년에 빌 페르트에 새로이 집을 짓고 `노이호프`라고 이름을 지어 거리에서 방황하는 고아들을 데려다 기술도 가르치고 공부도 시켜주었다. 농사가 차츰 자리 잡히자 1774년부터 자기 집에 고아들과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와 낮에는 일을 시키고 밤에는 글을 가르쳤다. 아이들의 교육에는 공부만큼이나 노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페스탈로치를 욕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려다가 일을 부려 먹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페스탈로치는 "일하는 그 자체도 교육입니다."라고 사람들에게 말하였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매일 놀기만 하고 거지 노릇으로 먹고 살던 아이들이 일이 하기 싫어 페스탈로치를 떠나기 시작했다. 빚까지 내가며 교육 사업을 하던 로치는 결국 애쓴 보람도 없이 실패를 하고 말았다.
페스탈로치는 자신이 했던 사…(생략)




위인전기페스탈로치를읽고나서페스탈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