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제목 : 헬렌켈러-A LIFE
저 자 : 도로시 허먼
출판사 : 미다스북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그것을 통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일컬어지는 수많은 인물들을 간접적으로 나마 만날 수 있었다. 그러한 여행은 늘 유쾌했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헬렌켈러라는 인물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다. 생후 19개월 앓았던 병으로 인해, 시력과 청력을 상실하고, 어둠과 고요함의 세계에 갇혀 평생을 살다간 그녀.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자기 자신을 감당하는 것으로도 힘겨워하며 생애를 보냈지만, 그녀는 자신이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며 살았었기에 너무도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버렸다. 하지만 평생을 홀로 살면서 어떠한 유혹도 견디지 않고, 오로지 베푸는 것 하나에서 오는 기쁨에 젖어 삶이 늘 기쁨으로 충만했던 것 처럼, 역사는 그녀를 왜곡된 성녀의 이미지로 묶어두었던 것 같다.
예전에 나오는 대부분의 평전들이 일방적으로 인물을 찬양하고 위대하게 그렸다면, 요즘 나오는 책들은 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아무리 위대할 지라도, 그 이전에 하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었기에.... 이번에 나온 도로시 허먼의 `헬렌켈러 -A Life` 라는 책 역시 그러한 의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헬렌켈러 이미지가 너무도 위대해서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헬렌켈러를 둘러싼 수많은 갈등들까지도 잘 묘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평전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헬렌켈러가 출생하던 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정상아로 태어났다. 19개월간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반응을 보이면서 살았다. 하지만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면서부터 그녀는 대부분의 장애아들이 그러하듯, 자기 중심적인 세상에 빠져들게 된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작가는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지닐 수 있는 일방적인 특징들을 제시하면서, 헬렌켈러 역시 그 당시에는 특별하지 않은, 단…(생략)
순히 장애를 가진 아동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헬렌켈러를 세상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오게 한 인물인 애니 설리번, 그녀 역시 헬렌켈러의 우상화와 함께 같이 위대한 인물로만 추앙되어 왔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녀의 불행했던 어린시절에 대해서, 그러한 기억들이 빚어낸 그녀의 모난 성격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꼬집어 말하고 있다. 게다가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 눈병을 앓아 점차적으로 시력을 상실하고 있었음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둘의 만남은 헬렌켈러에게, 그리고 애니 설리번에게도 행운이었다. 지금까지의 책들이 애니 설리번을 단순히 가정 교사로서 평생을 헬렌켈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간 인물로 그렸던 반면, 이 책은 궁핍한 처지에서 돈을 필요로 했던 애니 설리번의 현실적이고도 이해 타산적인 상황이 그녀가 헬렌켈러의 가정교사직을 수행하게 만든 이유였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애니 설리번이 헬렌켈러를 가르치면서 겪은 두려움과 어려움들에 대해 쓴 수많은 편지들 역시, 그녀가 헬렌켈러로 인해 겪었을 진통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어떠한 끈도 가지지 않았던 헬렌 켈러는 애니 설리번이라는 좋은 선생님과 본인 스스로의 끈임없는 노력으로 인해 자기의 껍질을 벗고 세상으로 한 걸음 딛게 된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분명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녀의 목에서 나는 소리가 바람이 세어나가는 쇤소리 같음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정상인과 다를바 없이 이야기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애니 설리번의 교육방식은 너무도 뛰어나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은 결코 헬렌켈러와 같은 장애인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바라보는 과장된 시선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애니 설리번은 헬렌켈러의 성장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으며 그것은 오로지 헬렌켈러가 다닌 학교의 영향이다 라는 식의, 그녀가 이룬 성공과 발전들을 자신의 공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수많은 후원 세력들 역시 존재했다. 아무리 위대했을지라도 그녀는 평생동안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음을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인물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 요인중 그 사회가 지닌 배경들은 결코 무시해선 안 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헬렌켈러가 살던 그 시절 역시, 세계 2차대전,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냉혹한 대립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와중에서 사회는 그녀에게 성녀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녀가 사회주의 운동에 복무했음을 은폐했다. 가난이라는 하나의 컴플렉스로 인해 돈에 대한 경제적인 관점을 지닐 수 없었던 애니 설리번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으면서, 소위 자본가라고 불리우는 후원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으며 생활하긴 했지만, 평생동안 소비에트에 대한 그녀의 신념은 꺽이지 않았음을, 그녀에 대한 어떠한 위인전도 그러한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장애인도 노력하면 장애를 뛰어넘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였고,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어떠한 장애인도 그녀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진 못했다. 사회는 모든 장애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지 않는, 소수의 뛰어난 장애인만을 품에 안을 뿐이라는 책의 한 글귀는 내 마음속에서 계속 요동쳤다. (그녀보다 조금 더 먼저 살다간 로라의 경우도, 큰 사회적 반향은 불러 일으켰지만 결코 사랑이 아닌, 무언가 특이한, 조사하고 연구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사람들에게 여겨졌었다.)
애니 설리번이 죽기 전, 헬렌 켈러가 누구냐고 묻는 장면을 보면서 그녀도 죽음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사람이었음을 지금까지 망각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특정한 이유에서 위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위대함이 완벽함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뛰어난 소수의 장애인을 끌어안는 것이 진정 장애인을 사랑하는 길이 아님을 느낀다. 여전히 `장애인에게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달라`라는 구호를 외치다 끌려가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장애인들을 바라보면서, 사회가 좀더 장애인에게 너그러워져 모든 장애인들이 헬렌켈러와도 같이, 아니 보통 평범한 일반인들 만큼만이라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인쇄
헬렌겔렌.hwp
[size : 29 Kbyte]
77
5
500 
3 P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