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횃불이 되어 민족의 길을 밝혀 준 도산 안창호 선생님 안창호위인전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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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8-18

횃불이 되어 민족의 길을 밝혀 준 도산 안창호 선생님 안창호위인전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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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횃불이 되어 민족의 길을 밝혀 준 도산 안창호 선생님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1878년 평안남도 강서군의 초리면 도롱도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를 여읜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면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청년 선각자 필 대은에 의해 신학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청?일 전쟁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자, 1894년 서울로 올라와 구세 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897년 독립 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때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일깨우는 연설을 하여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2년 후에는 강서에 점진 학교를 세워 시골 어린이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는 한 편, 황무지 개척 사업도 벌였다.
1902년에 이혜련과 결혼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보다 큰 뜻을 품고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면서 미국 초등학교 과정부터 공부했다. 그리고 한인 친목회를 만들어 동포들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1907년에 귀국하여 양기탁, 신채호 등과 함께 비밀 경사 단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민족 각성 운동을 펴 나갔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신민회를 뒷받침하기 위해 평양에 대성 학교를 세우고,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이용했으며, 평양과 대구에 태극서관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해 국민들에게 지식과 교양을 보급하는데 힘썼다.
1909년 안창호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로 붙잡혔다가 두 달 만에 풀려났는데, 이 때 망명을 결심하고 이듬해 베이징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가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여기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대한인 중앙 총회를 조직하고 초대 총장에 뽑혔으며, 1913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민족 부흥 운동 단체’인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의 힘을 기르는 데 앞…(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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