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흥선 대원군을 읽고서 독후감 흥선 대원군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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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11-25

흥선 대원군을 읽고서 독후감 흥선 대원군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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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을 읽고서

“풍운의 정치가 대원군!” 난 그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흥선 대원군은 조선 말기의 정치가이자 고종의 아버지이다.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대원군은 당시 세도를 떨치던 안동 김씨 밑에서 바보 노릇을 하며 목숨을 이어 가는 불우한세월을 보내야 했다.
‘안동 김씨들의 눈에 띄면 앞날이 위태롭다. 몸조심하자. 기회가 올 때까지 내 모습을 숨기며 참고 기다리자.’ 이렇게 마음먹은 대원군은 남모르게 열심히 학문을 닦았다.
여기서 나는 인내와 준비로써 훗날을 기약하는 대원군의 슬기를 엿볼 수 있었다.
대원군은 차츰차츰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 나갔다.
그리고 조 대비를 만나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와위에 올리기 위한 논의를 비밀스럽게 진행시켰다.
마침내 철종이 세상을 떠나자 둘째 아들 명복이 왕위에 오르게 되고 대원군의 섭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권력을 잡은 대원군은 당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다. 그리고 부패와 전횡의 온상이었던 서원을 대거 철폐하는 한편, 양반에게도 세금을 징수하고 일반 백성들의 세금은 감면해 주는 등 일련의 개혁 정치를 단행하였다.
당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지만 이런저런 명목으로 거두어들이는 세금 때문에 더욱 고초를 당했던 것이다. 그런 반면에 양반들은 호의호식하면서도 세금은커녕 백성들에게 논과 밭을 빌려 준 대가로 많은 곡식을 받아 챙기는 세상이 현실이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대원군의 정책은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경복궁 재건으로 인한 경제 파탄, 민비(명성황후)와의 불화로 오점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도 대원군은 개인 소유의 토지를 국가에 반납하고, 군사 제도를 개혁하고, 생활에 불편한 것을 고치며 서적 편찬에도 힘을 기울였다.
어찌 보면 대원군은 나라를 진정 사랑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원군의 가장 큰 실수라면 외국과의 통상을 거부하고 개방의 문을 굳게 닫은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개화를 늦추어 다른 나라에 뒤떨…(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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