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위인전기 정약용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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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10-10

위인전기 정약용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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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을 읽고
사실 나는 정약용이란 사람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의 책을 저술하고, 실학을 대성하였다는 것만 알 뿐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사회 시간에 배우다 보면서 알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그 위인에 대한 삶의 모든 것을 살피기로 결심하여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정약용이란 사람이 너무나 훌륭해 보였다. 어떤 고난에도 정의를 끝까지 지키신 분이시다. 외부의 어떤 상황이더라도 정의와 진리는 언젠가는 승리하고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오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태양이 나타나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것처럼 말이다.
조선 왕조가 시작된 지 400여 년이 지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 나라는 날로 어지러움이 더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파로 갈려서 서로 원수같이 여기며 당파 싸움이 벌어지고, 수령들의 횡포로 백성들만 불쌍한 그런 시기였다. 나는 정말 이런 시기가 마음에 안 든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 모범을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같은 백성들끼리 합심해서 정치를 못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왜 그렇게 당파싸움만 하는 걸까?
이런 좋지 못한 시기인 1762년 6월 16일 정약용은 아버지 정재원과 해남 윤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0세에 회시에 급제하였고 22세 때 정조 임금께 중용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792년도에는 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힘들이지 않고 움직이게 하는 거중기를 만들어서 수원성을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빨리 쌓았다. 예전에는 수원성이었지만 지금은 화성으로 이름이 바뀐 우리 수원의 자랑스러움 문화재는 청나라 책의 서양식 축성법에 따라서 지어졌다고 한다. 진짜 훌륭하다. 그 당시에는 금지했던 서학이지만 읽어 자기 것으로 소화 흡수하여 거중기까지 직접 만들어 우리 것을 창조하였으니 말이다. 역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이로 인해 정조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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