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기 - 위인전기 퀴리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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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위인전기 퀴리부인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노벨상의 영광을 두번 씩이나..

나는 퀴리 부인을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로서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길을 퀴리 부인은 온갖 어려움 끝에 이겨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방사성 원소를 연구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씩이나 탔습니다.
퀴리 부인은 1897년, 폴란드의 서울 바르샤바에서 5 남매 중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의 이름은 마냐라고 불렀습니다.
11살 때 어머니를 여의 마냐는, 16살 때 바르샤바의 관립여자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1891년, 마냐는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들어갔으며, 26살 때 물리학 학사 시험에 1 등으로 합격했습니다.
29살이 되자, 마냐는 피에르 퀴리와 결혼하여 퀴리 부인이 되었으며, 프랑스의 국적을 얻었습니다.
퀴리 부인이 방사선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맏딸이 태어나던 1897년부터입니다.
이듬해에 퀴리 부인은 피치블렌드에 들어 있는 두 원소를 발견하여 폴로늄 및 라듐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라듐을 발견함으로써 온 세상은 깜짝 놀랐습니다. 죽어 가는 환자들에게는 더 없이 밝은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퀴리 부부가 라듐 제조법에 관해 특허를 받는다면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퀴리 부인은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특허권을 포기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정신입니까? 요즈음 같으면 돈벌이에 이용하려고 눈이 휘둥그래졌을 것입니다. 나는 이 위인 전기를 읽고 퀴리 부인을 훌륭하게 생각한 점 두 가지만 들겠습니다.
한가지는 퀴리 부인이 낯선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입니다. 남의 나라의 말을 배워서 공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공부를 하려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퀴리 부인은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남보다 2배 이상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소르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참된 용기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다.”
퀴리 부인의 이 말은, 무엇이든지 하면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나에게 불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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