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자작 - 원미동 사람들 뒷 이야기 꾸미기 원미동

원미동 사람들 뒷이야기
그 후, 싱싱 청과물 자리에 전파상이 들어왔다. 가게 이름은‘쏘니 전자’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지 모르겠으나 가게 이름까지 비슷한 것이 시내 엄마는 무척이나 불쾌한 눈치였다. 누군들 시내엄마의 상황이라면 그러하지 않겠는가? 쏘니 전자 주인은 이사오자 마자 떡을 돌리며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가게에 오면 서비스를 잘 해 드리겠습니다.”
등등 여러 말을 남기며 개업 인사를 톡톡히 치렀다.
어찌나 상냥한 웃음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던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동네에는 칭찬이 자자했다.
가게 또한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어 역시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가게 안은 온통 최신 유행의 텔레비전과 알록달록 색색의 라디오 등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원미동 거리에서는 좀처럼 볼…(생략)

아니 더 이상 지쳤다는 표정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가게도 깨끗이 하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고 품질도 좋은 것만 들여놓았는데,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아직까지 손님이 한 명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쯧쯧..정말 안됐어. 쏘니전자 말이에요. 아직까지 손님도 한 명 없었다니 뭐예요?”
“뭐여? 그것이 참말이여? 그냥 소문인 줄만 알았는지 진짜인가 벼…….
어쩌믄 좋아. 불쌍해서 어쩌. 그 집도 먹고 살라고 우리 동네에 온 것인디, 누구라도 한 번 가 봐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고흥댁이 안타까워하며 털어놓았다.
“그래도 그라믄 쓰당가. 시내 엄마는 어쩌고.”
정육점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 저으며 답했다.
사람들 모두들 쏘니 전자를 보고 안타까워만 할 분 누구도 앞장서서 들어가지는 못했다. 용감한 척 들어갔다가 괜히 시내 엄마를 포함해 이웃사이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염려된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쏘니 전자에 첫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저희 가게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지도 모른 채 너무 기쁜 나머지 인사를 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첫 손님이 다름 아닌 써니 전자의 주인 시내엄마인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가게 밖에서는 어느새 수다 떨기 좋아하는 원미동 여자들이 모두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번 일을 떠올리며 그 때처럼 한바탕 싸움이라도 날까 염려하면서도 궁금해서 못 기다리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녕하세요? 저 아시죠? 써니 전자네 시내 엄마에요. 그 동안 인사도 못 드리고 정말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하지요. 저는 소희 엄마라고 해요. 그런데 시내 엄마가 저희 가게에는 웬일로….”
“웬일은요. 같은 전파상 하는 사람들끼리 잘 지냈으면 하구요.”
“네. 네. 그러세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우리 모두 어렵고 힘든 처지인데, 이럴 때 일수록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지요. 그러구 말구요. 아무튼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대해 주셔서.”
쏘니전자 주인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원미동 여자들은 머 그런 거 가지고 눈물까지 글썽 거리냐고 속삭였지만 쏘니 전자는 나름대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서울에서 잘 되던 남편 사업이 망해 전 재산을 털어 이 가게를 냈는데 손님도 한 명 없어 빚도 못 갚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었다.
물건을 한 대도 팔지 못하고서는 단 한 달도 버텨 낼 이유가 없는 형편이라면서….
“소희 엄마! 머 그런 거 가지고 울고 그래요? 힘내요! 우리 둘 다 열심히 장사 해보자고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요. 알았죠?”
그 일이 있은 후, 써니 전자와 쏘니 전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듯 하였다.
원미동 사람들의 고민도 저절로 해결되었다.
최신 텔레비전이나 색색의 라디오를 원하면 쏘니 전자에서, 형광등이나 건전지 등 나머지 물품을 살 때에는 써니 전자에서 사면되는 것 이었다.
가게 장사야 그 전과 다를 바 없이 잘 될리 없었고 돈도 몇 푼 못 벌었지만 그들은 그제야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 돈 조금 더 벌려고 아등바등 이웃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보다 서로 조금씩 이해해주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오랜만에 원미동 거리에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