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얼마 전, 우리 학교에서 서울대학교 생물학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그 교수는 생명공학을 전공하신 분은 아니었지만 생물학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소개를 하셨는데 그 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본래 생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요즘 생명공학이다, 유전자지도다 해서 그 분야의 인기가 상당히 높지만 나는 물리, 화학, 지구과학에는 모두 어느정도 이상의 관심이 있는 것에 비해서 유독 생물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고, 물론 공부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비슷한 책 제목인 ‘이타적 유전자’도 있다) 라는 제목에는 많은 흥미를 느꼈다. 대체 유전자가 어떻게 이기적일 수 있고 이타적일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생물체의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행위 자체를 유전자가 제어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책에 대해 흥미를 느…(생략)

다. 유전자는 원시 수프때부터 단백질 막과 같은 단순한 종류의 기계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계속 진화하면서 (유전자가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하면서 그것의 기계를 만드는 기술 역시 발달한다.) 인간에 이르렀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미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프로그래밍 언어의 조건구문처럼 ‘위험한 것이 다가오면 피해라’ 라는 식으로 이미 명령이 입력되어 있어 본능적으로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가 그 때 그 때마다 몸에 명령을 내리는 것은 너무 느리므로, 그것은 이미 프로그래밍 해놓고 자신들은 그저 복제만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것들의 유전자가 이미 프로그래밍을 해 놓은 프로그램과 같은 행동양식에 기초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혈연관계를 중시하고 협동과 같은 이타적인 행동 역시 모두 이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런 주장은 황당하다 못해 어이없기까지 하다. 모든 것이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고 우리의 뇌는 유전자가 프로그래밍 해 놓은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자. 하지만 그것은 너무 비약적인 내용이다.

인간은 비록 태어날 때의 유전자의 형질이 있더라도 죽을 때까지 그것에 따라 살아가지는 않는다. 인간은 살면서 다양한 조건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려 하는데 그것을 학습이라고 한다. 마치 언뜻 보기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중심적 사고관은 이러한 것까지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아까도 말 했듯이 유전자는 한번 기계를 프로그래밍 한 다음엔 그것의 행동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며 그 대에서 습득한 학습내용은 유전자에 의해 대물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물론 생물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만을 써놓은 책을 읽고 이 책을 과학적으로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몇가지 예외를 들어 보고자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책에서 밝히길 유전자는 일종의 단위이며 그룹선택설과 개체선택설이 아닌 유전자 선택설을 제기했고 그에 따라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 모두에 동의할 수는 없다. 그 중 한 예로,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우리의 개체는 혈연관계에 의해 우리와 직접적으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남에게는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자신이나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이보다 더 정확한 지적을 한가지 더 하자면, 리처드의 혈연이론에 따르면 아버지와 아들은 유전자의 반을 공유하므로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되고 어머니와 아들 또한 유전자의 반을 공유하므로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유전자를 전혀 공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부부간의 사랑은 유전자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 되어 버린다.

물론 이 외에도 책에서 지적할 부분은 많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남아있던 것은 유전자가 인간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유전자를 이용하는 것이고, 유전자는 단지 물질에 불과한, 번식에 필요한 물질이며 각 몸의 여러 가지 형태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설계도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단지 정확한 설계도면일 뿐이고, 그것은 다음 대에 이어져 하나의 생물체를 이루게 하는 뼈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나의 가슴 언저리에 남아있던 것은 ‘과연 현대의 과학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였다. 나는 신앙생활을 오랫동안(물론 독실한 편은 아니었다.) 하면서 과학은 신이 만든 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 자신은 신을 믿고 그의 능력을 믿고, 또 그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이 자연과 인간과 세상을 믿고 또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행복을 느끼며 산다. 하지만 지금의 문명은 그것은 부정이라도 하는 듯 자연과 신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그것을 무시하고 경멸하며, 모든 것을 그들의 과학으로만 설명해 내려고 한다. 그 중 한 분야가 유전자, 생명복제와 관련된 생명공학 분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생명공학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종교적인 점이나, 윤리적인 점으로 볼 때 그것은 마치 물속에서 확산되는 기름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학자들이 유전자 지도를 하나하나 완성해 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그들은 인간의 생각이나 따뜻한 마음, 사고, 열정, 친구간의 우정, 심지어는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까지 모두 밝혀낼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있다. 또한 그들은 그것을 단지 단순한 물리, 화학적 작용에 의한 결과물로만 보고 있다. 좋아하는 것에 한없이 빠져들 수 있는 열정이나 말하지 않아도 같은 꿈을 꾸는 친구 사이의 우정과 같은 것은 분명 더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현상이고 단순한 물리, 화학적 변화에 의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자연의 아름다움조차 그들의 보잘것없는 수식으로 표현하려고 애쓰고 심지어는 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과학을 하려 한다.

20세기 최고의 애니매이션으로 평가받는 ‘에반게리온’에서 인간은 신을 복제한 결전병기 ‘에반게리온’을 이용하여 인류의 불완전한 요소를 보완하고 신의 영역에 도달하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든 인류의 자연으로의 환원과 태초 아담과 이브로 돌아가는 것’ 이었다.

먼 옛날, 고대 사람들은 한때 신을 무시하고 자연을 경시하며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했었다. 사람들은 신의 경지에 올라가기 위해 하늘까지 닿을 수 있는 바벨탑을 지었지만 결국 탑은 무너지고 오만했던 사람들은 대홍수에 휩쓸려 멸망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지구라는 행성은 우주의 아주 극히 작은, 어쩌면 이 지구의 모든 원자 개수 중 하나의 비율도 차지하지 못하는, 일부일 뿐이다. 흙으로 된 탑을 쌓는다고 해서 지구 밖의 어느 곳에서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전자 지도와 게놈 프로젝트는 어떻게 보면 21세기의 바벨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유전자에 대해 밝힌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모든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얻었다고 해도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 열정, 사랑, 우정, 증오, 고독 이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진보된 과학을 가진 세상의 사람들이 볼 때, 지금 우리의 노력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어리석은 것이지만 그 사람들 또한 또 하나의 다른 바벨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점을 생각할 수 있었다. 어쨌든 과학적인 입장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은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운 것이다. 유전자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훨씬 더 보람찬 독서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