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막7장을 읽고 7막7장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를 읽고.
이 말 한마디에, 이 책의 모든 것,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모든 것이 담겨 있음을 나는 느낀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정지할 수 없으며 정지하지 않고, 현 상태로 있을 때 그는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정욱은 바로 그 정지하지 않는 삶을 살았고,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지금의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어린 시절, 나는 너무나도 소심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무엇 하나 용기 있게 도전하지도 못했고, 무슨 일을 해도 늘 주춤거리며 남들 뒤에 숨어서 따라가기만 하려 했다. 나이가 들어 겉으로는 당당하게 구는 법을 배우면서도, 속은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던 나. 그리하여 하루 하루 그저 무의미하게 삶에 끌려 가기만 하던 나. 그야말로 ??정지한 삶??을 나는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7막 7장을 읽게 되었던 것은 중학…(생략)

다. 어린 시절 나는 과학자의 꿈을 품고 있었고, 누가 물으면 항상 ??과학자가 되겠다??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사람들이 ??취직도 어렵고 수입도 적다??며 의과를 권유하자, 결국 나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 수 없는 상태로 흐지부지 그 꿈을 잊고 의대에 진학하고자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이 사람이라면 그렇게 했을까?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꿈을 포기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끝까지 나아갔으리라. 그런데 나라고 못할게 뭔가? 진짜 성공해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과학자는 얼마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못들 것은 또 뭔가? 이런 생각은 나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혁명이었다. 늘 ‘난 안돼’라는 생각에만 빠져있던 내가, 마침내 ??나도 할 수 있어??로 생각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그의 미국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는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구체적인 길을 제시해 주었다. 지금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진 그이지만,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영어 실력이 너무나 형편없다는 이유로 고등학교에 원서조차 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 그토록 철저히 퇴짜를 맞는다면, 그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만큼 받고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귀환해야 할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가 택한 길은 달랐다. 하루종일 잠도 자지 않고 영어를 공부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일단 작문이 어렵자 참고서와 책들을 무조건 암기해서라도 답안을 채워나가고, 심지어는 사전을 통째로 외우기까지 하며 잠도 자지 않고 공부했다는 그. 그 이야기는 내게는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나는 또다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저 학교 내신만 잘 받아서 좋은 인문계고에 가 3년 수능 공부만 하면 된다-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적당히 영어 수학을 공부하면서 밤에 11시만 넘어도 잠들어버리고, 공부보다는 좋아하는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나. 나는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를 깨달았다. 남들이 보기에 너무도 머리가 좋아 힘들이지 않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수록, 그 뒤에는 너무나도 큰 노력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백조가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있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쉬지 않고 발을 저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머리가 나빠서 안 된다 라는 것은 자기 변명에 불과한 말이었다. 서울의 중학교에서도 ‘잘 나가는’ 학생이었던 그도, 영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밤잠을 새우고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며 공부했다는데, 스스로가 한참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늘 공부보다는 노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내가 무슨 성취나 결과를 바랄 수 있을까. 처음에 깨달았던 할 수 있다‘는 생각, 그 뒤에 내가 얻은 배움은 ‘그러나 거기에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밤새도록 공부를 하는 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예전의 그 목적 없이 기계적으로 공부하던 때의 내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스스로를 믿고, 나의 희망과 성취를 위해서 공부한다. 그것이 비록 그리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공부하는 그 순간순간만큼은 더할 수 없이 책에 집중을 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책상 위에 앉으면 바로 공상부터 시작했던 내가, 지금은 일단 공부를 하고자 자리에 앉으면 옆에서 누가 불러도 깨닫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니, 정말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난 일이지만, 나는 부산시 과학경시에서 금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다. 나 스스로가 장담하건대, 만약 내가 이 책을 통해 생각을 바꿀 기회가 없었더라면 그 상은 내게 오지 못했으리라. 일단 경시대회 입상을 목표로 잡은 뒤로는, 몇 달 동안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도 책을 붙들고 있었고, 때론 점심도 안 먹고 도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는 일도 많았다. 내가 그토록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노력하면 할 수 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하는 그 생각 덕분이었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주위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다른 서적들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배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정욱의 이야기는 다른 점이 있다. 그의 인생은 단순한 ??앞날을 위한 노력‘ 만의 집합체는 아니었다. 그는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점이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내게는 어릴 때부터 즐겨왔던 많은 것들이 있다. 크로닌의 문학작품과 가아더의 철학 책들, 그리고 가모브의 물리 이야기..책은 어릴 때부터 내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리고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그리는 그림, 피아노로 가볍게 두드리는 ‘사랑의 꿈’의 한 소절, 한여름에 더위를 잊게 해주는 수영,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부르는 노래..이런 것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이다. 자리에 앉아서 그저 책만 들여다보는 삶은 내게는 끔찍하게 느껴진다. 공부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때론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류시화의 시집도 읽고, 한가한 일요일 낮에는 방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피아노도 칠 수 있는, 그런 ‘생활의 향기’를 나는 늘 원해왔다.
나는 그의 삶 속에서 그런 향기를 찾을 수 있었다. 바이런의 낭만적인 시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던져 축구를 하며 축구부 주장에 이르고, 비 영어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인 취미를 살려 학교신문사 편집부장 직책을 맡았던 그. 단순히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에 매료되어 그것을 즐길 줄 알고, 또한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며 살아 움직이는 기쁨을 맛볼 줄도 알고, 때론 학교 동료들과 밤을 새어가며 신문을 만드는 경험도 중시할 줄 아는 이. 그렇기에 나는 그가 진정 아름다워 보였다.
나 또한 그처럼 살고 싶다고 느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이. 하지만 그 노력의 와중에도 작은 즐거움을 가질 줄 아는 이. ??Listen! the mighty Being is awake..`하는 워즈워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이.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칠 수도 있고,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 그와 같은 삶을 나는 살고 싶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때론 작은 여유를 가질 줄도 아는 삶, 정말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성인군자는 아니다. 그러니 이러한 삶을 통해서 이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 한다는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물론 나도 무언가 이 세계의 사람들이 한 걸음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업적을 이루어내고 싶은 소망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순수하게 이타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가능하면 넉넉하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고 싶을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부나 명예보다는 과학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하고싶은 연구를 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수입이 적은 직종이라도 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물질적으로도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면에서, 홍정욱은 나의 모습을 닮은 듯 했다. 그는 결코 전기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착하고 공평하고 친절한?? 성인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권력욕도 있고 명예욕도 있으며, ‘힘 있는‘ 친구들과 사귀어 프레피(preppy)가 되기를 자처한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동양계 학생들을 무시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불의를 눈감기도 했던 그의 행동들이 무조건 옳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조건 정의와 선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야망을 가지고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그것을 얻고자 최선을 다할 줄도 아는 그의 열정이다. 그렇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면, 이왕이면 큰 야망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투혼을 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야망을 잃어버린 인간은 가치가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 야망이 없다면 비록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도, 그는 앞으로 나아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아니면 물질적인 것이든 간에, 야망은 우리가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노력해서 앞으로 전진해가도록 자극해 준다. 결국 모든 행동의 근본은 야망일지도 모른다.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그의 책을 읽은 뒤, 나는 내 야망이 부끄럽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슴속에 야망을 지니고 있다.
-가슴에는 야망을, 머리에는 희망을 품고서 앞을 내다보고 나아가는, 정지하지 않는 삶.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읽은 것이었다.

책을 읽었던 그날, 나는 밤새도록 몇 번이고 책장을 다시 뒤적이며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었는지 모른다. 물론 당장에 스스로를 뜯어고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 뒤로 용기를 내어 서서히 변화해 갔고.. 지금 나는 일년 전과는 너무도 달라져 버린 내 모습을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는 듯, 친구들은 내게 변했다는 말을 그다지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할 때면, 어머니에게서 ‘변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 자신이 스스로가 변했다고 느낀다. 늘 의기소침하고 의욕이 없었던 내 안의 그 작은 아이는 어디로 간 것인지... 때때로 나의 변화에 스스로 너무도 놀랄 때가 많다. 항상 도전적으로 문제에 맞서기를 좋아하고, 토론을 할 때면 다수를 등지는 입장을 취하는 걸 즐기는 내 모습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조금 낯설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늘 ‘난 안될 거야’하고 겁먹었던 나였는데, 요즘은 뭐가 그리 간이 큰 것인지, 오히려 나에게는 턱없이 어려워 보이는 일까지도 ‘아마 될 거야’하고 자신하는 내 모습은.
그리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좋다. 누가 어떤 고난을 내게 던져주더라도, ‘할 수 있을 거야’하고 외치고 잠을 못 자더라도 끝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다 쓰며 해결해 나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 말이다. 공부를 할 때는 당당하게 ‘나 공부해’하고 선언하고 책에 파묻힐 수 있고, 시험이 끝나서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면 몇 시간이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 내 모습이 좋다. 정지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금의 내가 좋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나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찌 아니 그럴 수가 있겠는가? 내가 품은 야망이 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젊은 신체와 젊은 영혼이 있으니.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걸까, 아니면 죽어 가는 걸까?’하는 말이 있다. 결국 그것은 그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살아간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에 감사한다. 나는 신의 존재여부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가지론자 중의 하나이지만, 그래도 때로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절대적인 존재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 누군가가 내 앞에 이 책을 놓아주었기에, 나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진정으로 정지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이 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했을 것인지, 정말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가 이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보라고, 앞을 내다보고 큰 야망을 가져 하루하루 정지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라고, 그 말을 하고 싶어했던 것이리라 믿는다. 그것은 일상에 시달려 그저 아무런 목표나 의욕도 없이 ‘죽어가고’있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들 모두가 잠깐만 시간을 내어 이 책을 한번 천천히 읽는다면, 그리하여 몇 번이고 또다시 읽어 내려간다면, 그리하여 쉼 없는 노력을 통해 하버드 최우수 영예 졸업이라는 영광까지 나아갔던 그의 이야기를 읽는 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우리 모두에게 있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되리라. 모두가 고개를 들고 앞을 내다보며 ‘살아가는’ 세상이 될 테니까. 그저 무기력하게 태어났으니까 살아가는 것이 아닌,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야망을 찾아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가슴에 멍이 들고 지쳐 있는 현대의 사회인들도 삶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정지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이, 홍정욱. 그리고 지금, 정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 내가 사르트르의 기준에 미치는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면서, 저자가 책을 맺으며 썼던 것과 같은 말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모든 일에는 어찌 그리 합당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인지
아, 삶의 구석구석이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